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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우도 가는 길 ; 우도의 아이들 & 가족의 섬?

고흥돌문어 2024. 7. 19. 11:13

우도는 오지다. 우도 아이들 이야기도 오지다.
고흥에 신비의섬, 가족의 섬, 보물섬이 있다. 소머리를 닮은 외진 섬마을 우도(牛島). 화살의 몸통을 화살 전(箭)자를 써 전죽(箭竹)이라 하는데, 대나무 품질이 전국에서 제일이라 조선시대 왕이 쓰는 화살은 지금의 우도, 우죽도(牛竹島) 대나무(신우대)를 사용하였다. 왕의 화살 대나무를 생산하는 곳이므로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었다, 고 고흥문화원 자료에 적혀있다.

아침물길, 저녁물길 하루에 두번 바닷길이 열리니 모세의 기적을 닮은 신비의 섬이다. 최근에는 섬과 육지를 이은 국내 최장거리의 연륙 인도교 도 생겼다.

왜 가족의 섬인지 궁금하다.
물 때만 잘 맞추면(?) 우도에서 젊은 연인들이 하룻밤을 지새우기 좋은 섬이니, 연인가족이 된다, 하여 가족의 섬인가? 인생은 여행이다. 안개처럼 무지개 같은 , 우도 여행으로 배워야 할 그 무엇, 보물이 숨겨진 섬이니 보물섬인것은 틀림이 없다. 우도 맞은편 대전리 해수욕장이 내가 어려서 소풍 때 보물찾기 하던 곳이다.

어려서 내가 보았던 득량만 맞은편 대서면은 가깝고도 먼곳, 삼팔선 너머 북한쯤으로 보였고, 우도는 있는 줄도 몰랐다. 얼마 전에 알았다. 그시절 아이에겐 우도는 제주도나 독도였다.
어린아이의 시야였다. 커가며 먼길은 가까운 길이 되었다. 우도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우도분교 선생님 말씀에도 사람의 '시야' 에 대한 그런 말이 나온다.

우도 보물섬에 관한 46분짜리 KBC 타큐멘터리 <학교 가는길>을 보았다. 득량만을 사이에 두고 고흥 남양면 우도 맞은편 작은마을에서 나는 유년시절을 보내서 일까? 한편의 영화처럼 나는 몰입하여 참 재밌게 보았다. 어느 독립영화보다 여운감동이 있는 우도 아이들 이야기다. 영화제 다큐부문에 출시해도 좋을 작품이다. 우도길을 걸으며 그냥 경치가 참 좋네~바다 길이 왜 두번 열리지? 하며 뇌가 과학적으로 분석하려 들면 그건 그냥 관광이다. 우도 길을 걸으며 우도 다큐를 보며, 아!~ 저게 사람이구나~, 인생이 구나~하고 그 무엇, 나에게 주는 의미를 찾으면 우도 가는길은 인생여행 작품이 될 것같다. 여행작가들이 왜 '나를 찾는 여행' 이라 하는가?

1) 인생길은 비움과 채움의 반복이다.
우도에는 하루에 두번 길이 열린다. 밀물과 썰물 조수 간만의 차로 생기는 갈라짐 현상은 전국에 14곳이 있다. 주로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과 남해안에 많다.

물은 채움이요 썰물은 비움이다. 비워야 길이 보이는 것은 자연이 알려주는 인생의 진리다. 국립해양조사원이나 네이버를 검색하면 바다가 언제 갈라지는지 일별로 나온다. 채움과 비움의 시간이다. 사람에게는 이태리 타올님 말씀(?) 처럼 다~때(?)가 있다.  바다에는 하루하루 믈때가 있다. 우도 가는 길이 열리는 시간이 매일 50분씩 늦춰진다, 는 정도는 알고가면 좋겠다.

2) 사람은 내일에 대한 꿈과 희망을 먹고산다.

영화같은 우도 다큐에는 5명의 우도분교 초등학생이 출현한다. 다큐를 시작하며 아이들이 각자의 꿈을 말한다.  노래 부르는 가수, 춤추는 비보이(B-Boy), 물살을 가르는 수영선수,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꿈이란다. 초등학생들이라 그런건지 판검사나 의사, 아니면 정치인을 꿈꾸는 아이는 없다. 꿈도 세월따라 변한다. 나의 어릴적 꿈은 고흥에서 대빵! 군수였지만 지금은 고흥 여행가이드이다.
우도 아이들의 꿈, 그중에서 가장 울림을 주는 아이는 무슨 사연인지 부모와 함께 살지 못하고 할머니와 함께 산다.
🎵 외로워도 슬펴도 나는 안울어~ 하는 우도의 캔디 2학년 박지은 아이다.  

3) 쓸모없이 태어난 생명은 없다.
우도분교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강아지 똥》동화책을 읽는다. 우리때 중년들은 잘 모르는 동화이지만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아는 동화다. 우리때는 '개똥도 약에 쓰려니 없다' 속담으로 배웠는데 요즘 아이들은 동화로 배우는구나~했다.  

나의 블로그 글에도 <안동과 安東  ;  남도의 안동은?> 제목의 글이있다. 우도다큐에 안동이 나은 권정생 동화작가《강아지 똥》이 나온다. 어떤 내용인가?
강아지 똥이,나는 어디에도 쓸모없다고 신세 한탄을 한다. 강아지 똥이 소달구지에서 떨어진 흙더미와 이야기를 하다 민들레를 만난다. 민들레의 관심사랑으로 강아지똥은 흙더미 속으로 들어가 민들레가 피게 한다는 이야기다.

우도 아이들 이야기를 가만히 듣자니, 동화에 나오는 소 그림이 소머리를 닮은 우도에 있어도 좋겠다. 무지개 다리에는 다리를 밟으면 동화가 흘러나와도 좋겠다. 우도에 자전거길로 만든다고 하니 고흥生 동화작가 목일신 따르릉~따르릉~비켜나세요~자자전거가 나갑니다~따르르르릉~🎵 을 들으며 자전거를 타도 좋겠다.

하여간, 《강아지똥》동화에서는 소 달구지에서 떨어진 흙덩이가 나는 쓸모없어 버려졌다, 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인이 다시 소중히 자신의 흙을 두손으로 담는 동화속 명장면이다. 흙덩이는 다시 곡식이 자라게 하는 쓸모있는 그  무엇이 된다.

동화작가들은 '어른들이 동화책을 오히려 더 읽어야 한다' 고 한다. 작가들은 어른을 위한 동화책도 쓴다. 우도 아이들은 자신들이 어찌보면 강아지 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이야기 하는 것일까? 권정생 작가는 생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별 볼일 없는 사람?
별☆볼일 없는 사람들은 되려 도시나 서울사람들이 아닌가? 고흥 청정하늘의 별은 전국에서도 유난히 총총하다. 나로도우주센터가 있고 우도의 맞은편 두원면 성두리 내고향에는 두원운석이 떨어졌다.

내가 도시에서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느껴질 때, 별 볼일 있는 사람이 되려면 별이 총총한 남도여행을 떠니자.

우도에서 벌교를 지나 순천만에 가면 권정생 동화작가 만큼 잘 알려진《오세암》을 쓴 동화작가 '정채봉관' 있다. 순천만습지 바로 옆 순천문학관 에는 순천이 나은 현대소설의 거목 김승옥관과 동화소설의 거장 정채봉관이 있다.

정채봉 작가도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 와온해변을 보며 자랐다. 와~따뜻(溫)해서인가? 와온 해변길도 좋다. 그시절 시집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스무살 어머니》를 정채봉은 일찍 여위였다. 부모없이 우도에 사는 아이들 처럼 광양 외할머니와 함께 정채봉 작가는 살았다. 그는 커서 유명한 동화작가가 되었다. 편지를 읽어 볼 어머니가 계시지 않아, 어머니가 하늘나라에서 휴가를 나온다면...으로 편지를 시작하여 순천 송광사 불일암에 있는법정스님에게 보냈다.  왠만하면 스님은 슬픔을 속으로 삼키련만, 법정스님도 눈물 흘리게한 정채봉 동화작가다. 순천 송광사에는 비움의 길 , 무소유길이 있다.

도시에서 태어나 시쳇말로 날고 긴다(?)는 배운 사람들이 강아지 똥 촌아이로 자란 권정생과 정채봉 동화책에 열광을 한다.  사람사는 세상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4) 쓸모가 없는 편견을 버려라.
가수가 꿈인 박지은 학생, 그것도 초등학교 2학년 지은이가 '쓸모가 없는 편견은 버려라' 하고 말한다.

방과후에 전교생 5명이 모여 동화《강아지똥》이야기를 나눈다. '편견'에 대해 이야기 한다. 비보이가 꿈인 은상이가 '편견 뭐예요?' 하고 물어본다. 선생님이 말한다.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 을 편견이라 한다. 바다물이 한쪽으로 쏠렸다 다시 한쪽으로 밀려오는 자연의 섭리를 보고자란 우도의 아이들이 편견을 말한다.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쓸데 없는 것은 강아지 똥이 아니라 편견 이라는 생각을 또 해본다. 사람들에게는 고정관념과 편견, 오만과 편견이 학습하며 커가면서 생긴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경쟁사회에 적응하려는 적자생존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그 고정관념과 편견을 벗겨내면 사람의 본모습, 나의 본 모습이 나온다. 유럽사람들이 요즘 최고(No.1)이라고 말하는 철학자 니체가 왜 인생을 낙타, 사자, 아이의 단계로 살라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중년이 지나 사자의 단계에서 아이의 단계로 가려면 '단단한 벽돌을 깨듯 고정관념을 망치로 깨라' 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명저를 남긴 사람이 니체였다. 《마흔에 읽는 니체》라는 책에는 아래의 그림과 니체의 말이 있다.

망치는 고정관념을 깨는 용기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힘을 준다.

5) 듣고 보는 것이 한정되면 시야가 좁아진다.
우도분교 선생님 말씀에 선생님이 아이들에 대해 생각하는 짠함이 느껴진다. 도시학교 처럼 학생이 많아 아이들이 이런 저런 친구들 다른 생각도 듣고 그것을 자기생각과 비교해 또 다른 생각도 해야되는데~...우도 아이들은 보는 것과 듣는 것이 한정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 때 촌(村)에서는 할머니, 어머니가 과외 국어선생님이 였는데 요즘에는 TV, 인터넷이 발달하여 사투리는 덜 할 것 같다. 우리 때는 천혜(天惠)와 천해(天海)의 청정자연에 친구도 득량만 낙자(?) 낙지처럼 바글바글 했는데, 선생님 말씀처럼 또래 친구가 없으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 돌아가신 후에 유년시절 추억을 이야기 할 수 있는 형제와 깨복쟁이 또래 친구가 있다는 것, 시골고향의 추억이 있다는 것이 사람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이 글을 쓰며 느낀다.

6) 아이들 일기장에는 나(我)가 들어있다.
우도의 반지락ㆍ꼬막ㆍ소라ㆍ고동 알처럼 속이꽉찬 알처럼 들어있다. 대통령의 말에 주어가 없다는 논란도 있었다. 나도 그렇지만 어른들 글에는 주어가 없거나 명확하지 않는 알이 없는 글들이 많다. 우도 다큐에는 일기장을 읽는 우도 아이들이 나온다.

¤ 우리 할머니는 동강장에 가서 낙지를 파신다.
¤ 우리 어머니는 아침일찍 일어나 바닷가에 나가신다.
¤ 우리 선생님은 이쁘다.
¤ 나는 우리 학교가 참 좋다.

아이들의 글은 짧고 형용사에 동사가 붙는 능동형 글이다. 그냥 좋다~하지 않고 참 좋다~말한다. 한국인은 학습하며 커가며 참~이라는 감탄형용사를 잃어간다. 어른들 말과 글에는 사람의 진솔한 감정을 드러내는 감탄사나 형용사가 별로 없다. 그냥 좋다, 싫다한다.

2학년 학생 지은이는 '나는 오늘이 생일이다 ' 라고 큰소리로 읽는다.

일기를 방학 끝나는날 한꺼번에 다 썻다. 그날의 날씨가 친구들과 서로 다른 나의 국민학교 시절 일기장이 그립다. 나의 역사문화박물관에 일기장 하나 남겨두지 못한 것이 아쉽다.

초등학생들 일기장을 찬찬히 보면 항상 나는, 아빠는, 엄마는, 할머니는, 선생님은 하면서 주어가 있거나 주어로 시작한다. 말과 글은 언어요, 인간의 내면을 만들어 가는 것 중에 가장 큰 것이 언어다. (我) 라는 주어가 있는 것이 사람의 본 모습이다. 인간에게는 짐승에게는 없는 나(我)가 있다. 아이들에게는 나(我) 가 항상 머리속에 자리잡고 있다. 커가며 학습하며 나를 잃고 남눈치 보며 살아야 해서 그런가 는 점점 뇌속에서 상실되어간다.

자존감 회복 이라는 말은 무엇이였던가?
사람은 집이 있어야 행복하게 산다. 한국의 현대도시인이 좋아하는 재건축ㆍ재개발 그 집만 집이 아니다. 언어라 불리우는 존재의 집이 있어야 행복하게 살수 있다. 인간의 존재에 대해 연구한 실존주의 철학의 아버지, 하이데거는 현대를 고향상실의 시대, 존재의 근원, 인간본성, 실존의 상실의 시대라 말했다. 그리고 상실된 실존이 그리 멀지 않는 곳 '고향과 고향에서 어릴 때 나의 모습' 에 있다고 했다. 쉽게말해 부ㆍ명예ㆍ권력이나 사회적지위(가면)으로 채울 수 없는 빈자리, 자존감의 근원이다.  중년에 찾아오는 갱년기 우울증은 다 이런 빈자리가 생겨 뭘 소유해도 마음이 허!~하기 때문이다.

박지은 아이는 일기에 '오늘이 생일이다' '오늘이 나의 생일이다' 라고 쓰지 않았다. '나는 오늘이 생일이다' 라고 나는 이라는 주어가 꼭 있다. 이런 사람의 본 모습을 학교에서는 그들이 만들어 놓은 문법으로 맞다, 틀리다로 제단해 버린다. 그들의 문법이나 규칙이나 법으로 길들여 버린다. 우리 때 중학교 1학년 영어시간에 수동태, 수동태 하던것이 수동형 인간으로 길들여지게 하는 첫걸음이였다. 한국어에는 수동형 수동태가 없다. 국어말이 완전해 지기 전에 영어를 배우니 한국말도 영어처럼 수동태로 쓰는 사람이 많다. 회사에 보고서를 보면 사람들끼리 통하지도 위하지도 않는 사회에서 어떻게 그렇게 무엇을 통하여, 무엇을 위하여, 라는 문장이 많은지 모르겠다. 통하여는 무엇무엇 으로, 위하여는 무엇무엇 하여로 말해도 충분한데 말이다.

급기야는 회식장소에서도 건배사로 위하여~ 위하여~ 한다. 회식자리에서 나는 건배사를 큰소리로 위하여~ 하며 잔을 들고, 한 친구에게 '~ 위하여' 이죠? 하고 물어봤다. 그 친구가 답한다. 글쎄요???

'위하여' 는 영어에 'For' 에서 우리에게 익숙해졌고 '통하여' 는 영어에 'Through'  에서 나왔다.  우리때 중학교 1학년 교학사 영어 교과서 셋째장인가에 나오는 '  I eat Gimbob for lunch' 를 배운 후로, 김밥도 나를 위하여가 아니고 점심을 위하며 먹는다는 그런 영어식 표현에 익숙해졌다. 한창 국어를 더 배워야 할 나이에 영어번역하며 형광펜으로 밑줄까지 긋던 세월이 얼마였던가? 그후로 그런말 속에 나의 뇌는 남과 사물을 위하고 남탓하는 수동형 인간으로 길들여졌다.

8) 우도는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섬이다.
우도가는 길 들머리에는 소(牛)그림과 함께 '가족의 섬' 이라 쓰여있다.

다음카페 '고흥을 사랑하는 사람들' 카페에 한분이 댓글을 달았다. '우도가 왜 가족의 섬인지 안내판에 설명이 없어요...' 다른 한분이 댓글을 또 달았다. '물 때만 잘 맞추면 젊은 여인들이 들어가서 못나오고 하루밤을 지새워야 하니 연인이 가족이 되는 섬이지요 ㅎ ㅎ ㅎ"

우도 아이들을 보니 우도가 왜 가족의 섬인지 또다른 의미가 연상된다. 우도에는 박지은 학생 처럼 부모없이 할머니 슬하에서 사는 아이들이 살았다. 5명 아이들은 커가며 하나둘 상급학교로 진학하려고 우도를 떠났다. 인생이 궁극에는 나 혼자이듯 전교생이 지은이 혼자 인적도 있었다. 지은이가 우도를 떠난 후 우도분교는 폐교되었다.
우도를 떠나는 길에 순천 김승옥 作 《무진기행》한구절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무진에 명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진의 명물은 안개다.

우도에 명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도의 명물은 대나무요, 가족이다.
학교가는 길, 고흥 우도, KBC
무지개 다리, 고흥 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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