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빛낸 황금여인상(象)이 파리의 센강 위로 떠오른다. 파리 올림픽 개막식을 시청하였다. 순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서양화가 나혜석의《파리풍경》과《녹동풍경》이 머릿속을 이리저리 스쳐간다. 왜일까?
나혜석은 1927년 이렇게 편지를 남기고 돌연히 파리로 떠났다.
4남매 아이들아,
어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더니라
나도 가부장제가 심하고 그중에서도 더 심한 남도에서 자라서일까, 웬만~하면 살지 100년 전 그 시절에, 4남매까지 낳고 파리로 간 이유가 뭘까? 그 사연이 궁금해진다. 나혜석은 첫사랑 남도의 소월 고흥남자 '소월 최승구' 시인과 사별하고 서울남자 김우영과 결혼하여 4남매를 두었다.
그 한해 前 1926년, 우리나라 최초 성악가 소프라노 윤심덕은 목포남자 극작가 김우진을 사랑하여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 그녀의 아호는 물위에 핀 꽃(花) 수선(水仙)이었다. 너무나 사랑했기에 둘이 함께 몸을 던져 죽었다. 그녀가 부른 마지막 노래는 프랑스 샹송의 전설, '에디트 피아프' 《장밋빛 인생》우리나라 버전《사의찬미》였다.
웬만~하면 살지 또 왜 죽었을까? 얼마나 꿈과 현실이 다르면 현해탄에 몸을 던졌을까, 그 시절 여성을 옥죄는 사회현실과 녹동풍경이 떠오는다. 파리개막식에서 샌강 위로 떠오르는 저 자유의 여신상 닮은 황금의 여신상 처럼...
개막식에 10명의 프랑스 황금의 여인들이 등장한다. 프랑스 역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10명의 여성(Heroines)이다. 순간 또, 100년 전 프랑스를 여행한 조선의 한 여성이 생각났다. 그녀는 경성(서울) 뭍남성의 로망이었던 여성 나혜석이었다. 조선 아낙네로 살 것인가, 파리여성으로 살 것인가, 고민하다~, 가자, 파리로 살러 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 했던 나혜석이다.
어떤 블로거가 프랑스 황금여인상 10명의 여성에 대해 잘 정리해 두었다(글 마지막에 올림). 나는 그중에 '시몬 드 보부아르'와 '시몬베유' 밖에 모르겠다. '시몬~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그 시몬도 아니다. 시몬베유다. 최근에 읽은 《소크라테스익스프레스》에서 시몬베유처럼 관심 갖기, 보부아르처럼 늙어가기 부문을 인상 깊게 읽었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여성이 교학사 세계사 교과서 50페이지 셋째 줄(?) 잔다르크 아닌가? 15세기 잔다르크는 황금여인상에 없다. 주로 20세기 근현대 작가, 사상가, 페미니스트들이다.
개막식 시청이 끝났다. 토요일 늦은 아침에 글쓰기 하러 편의점으로 간다. 피서와 다이어트로 풍류가의 예술 글쓰기 만한 것이 없다. 몰입하여 글쓰기를 하니 뇌가 더움과 배고픔을 까먹으니 다이어트와 피서 일석이조다.
여름휴가 때 녹동항 가서 《녹동풍경》에 취해 갯장어 샤브샤브도 먹고 싶다. 순천 고향 고교은사님은《순천의 인물 100인》을 쓰셨다. 이번 참에 내려가면 꼭 다시 뵙기로 했다. 지난번 갯장어는 꼬리 부분이 맛갈스러웠는데, 고흥에 첫사랑을 뭍은 나혜석 작품 《녹동풍경》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그 꼬리의 끝은 <남도 황금의 여인들 10人>을 선정하여 글쓰기 하는 것이다.
《프랑스와 사랑에 빠지는 인문학기행》은 프랑스를 만든 여인이야기와 흔적이 있는 곳을 중요하게 다룬다. 그렇다. 《남도와 사랑에 빠지는 인문학기행》에서도 남도의 황금여인 보물 찾기를 해본다. 어려서 소풍 때 보물찾기 그 느낌, 그 기쁨 그대로...
남도에서 태어났거나 남도를 사랑했거나 남도역사에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을 시대와 시간순서로 찾아본다.
1.방수진 ; 방씨부인 ,《이순신 사랑을 하다》
보성군수 방진의 딸 '방수진'이다. 보성읍에 가면 볼거리 '방진관'과 '열선루'가 있다. '열선루'는 이순신이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장개를 올린 곳이라 한다. 방진관에는 방진실, 이순신실, 방씨부인실 이방~저방~세개의 방이 있다.
이순신 어머니와 이순신 아들은 후세에 잘 알려졌다. 왜 이순신의 부인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일까? 영화《노량, 죽음의 바다》에서는 여성이 유일하게 단 1명 출현한다. 그런데 왜 방씨부인 보다는 문정희 배우가 먼저 떠오르는 것일까? 우연일까? 남도황금에 여인들 아홉번째로 선정한 보성출신 문정희 시인과 동명이인이다..
프랑스 영웅 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질투하고 아이처럼 투정부리며 쓴 연애편지를 본 적이있다. 남자로서 공감할 수 있지만 저 편지가 전쟁의 화신, 프랑스영웅 나폴레옹이 쓴 게 맞나~할 정도의 너무나 너무나 인간적인 연애편지를 본 일이 있다.
그러던 차에 찾은 보물, 안지상 장편소설 《이순신 사랑을 하다》이순신의 여성성(性), 섬세함과 다양성이다.
그동안 남성성(性)인 권력과 지배, 힘의 시각으로성웅 이순신 장군으로 보았다. 이제는 사람 이순신 남자로도 보자. 이순신은 남자 아닌가? 인생에서 이렇게도 보고 살았으니 저렇게도 보고 살아보자는 의미다. 내가 보는 이순신이 곧 나(我) 일 수 있겠구나~그런 생각도 든다.
'방진관실' 개관 목적에는 '방씨부인이 한국(?) 여성상의 표상' 이라 적혀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데 방씨부인은 조선을 표상하는 것일까? 한국을 표상하는 것일까?
2. 강씨녀 ; 부엌칼로 왜적을 무찌르다.
총각 서울친구가 순천은 인물, 여수는 돈, 벌교는 주먹, 순천은 인물(?)이라며 순천여성이 미인(?)이라며 다짜고짜 소개팅 시켜 달라한다. 그 인물이 그 인물이 아니다. 내 인물(?) 보면 모르겠냐~ㅎㅎㅎ로 순간을 모면했다.
순천의 영화인물 김한민 감독 영화《노량, 죽음의 바다》에 여성이 방씨부인 단 1명 나오듯, 순천의 문학인물 장병호 著《순천의 인물 100인》에도 여성이 단 2명 등장한다. 순천生 판소리꾼 '박초월'과 '강씨녀'이다.
《순천에 인물 100인》중에는 서정순, 박이량, 정숙, 삼혜, 서정인 등 여성스러운 이름도 있지만 2명을 제외하고 모두 남성이다. 강씨녀는 조현범이 짖고 순천고 은사님이 찾은 <강남악부>에서 적혀있는 이름이다.
순천에도 순천고만 있는게 아니라 강남여고가 있는데, 묘하게도 강북악보도 아니요, 오리(鴨)와 갈매기(鷗)가 논다는 압구정(?) 강남악보다.
그 《강남악부》에 이름이 기록 보존되지 않고 기록만 남은 평범한 시골아낙 강씨녀였다. 2005년 KBS사극 김영민 주연 <불멸의 이순신>에도 이순신이 사랑한 여인이었나, 하고 그렇게 보았던 김규리 배우가 분장한 그녀의 이름도 개똥이였다.
김한민 감독 이순신 영화시리즈 1편《명량》1편에 나오는 가수 이정현의 명장면도 떠오른다.
말 못 하는 벙어리, 그녀도 이름이 없다. "임자~!" 임자는 왜 벙어리였고 조선의 여인 임자는 무엇을 표상하였을까? 저렇게도 서럽게도 옷고름 치마를 흔들고 있을까. 감독은 바꿔~ 바꿔~ 세상을 다 바꿔~ 🎵 노래를 부른 이정현을 왜 캐스팅 하였을까? 무엇을 바꾸고 싶었을까?
3. 이소사 ; 음악극《석대들을 내달린 꽃》
장흥에는 조선의 잔다르크가 살았다. 말을 타고 잔다르크처럼 손을 높이 들고 동학농민군 선봉에 섰던 이소사. 소사는 그녀의 본명이 아니라 과부나 부인을 칭하는 일반명사라고 한다. 석대들은 장흥읍 문외리에 있는 동학혁명의 마지막 전투가 있었던 곳이요, 동학혁명에서 농민들 희생자가 가장 많았던 곳이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재현한 음악극이《석대들을 내달린 아름다운 꽃, 이소사》였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했던가? 그녀를 왜 꽃이라 했을까? 그녀는 꽃(여인)보다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그녀도 말 달리자~ 🎵 를 했을 것이다. 당시 일본신문의 그녀의 대한 기사이다.
4. 나혜석 ; 고흥 첫사랑을 못 잊은 첫 서양화가
'자유연애'를 갈망했던 나혜석이 연애를 했던 남자는 네 명이었다. 남도의 소월 최승구를 결혼 전에 만났고, 첫사랑 최승구의 묘비를 세워주는 조건으로 결혼은 김우영과 했다. 결혼 후에는 파리에서 최린을 만나 연애했고 춘원 이광수와도 했다.
개항 이후 신식 교육을 받고 한 분야에 특출 난 재능을 가진 여성을 신여성이라 한다. 문학에 김명순, 음악에 윤심덕, 무용에 최승희, 종교계 김일엽, 언론계 김원주, 미술에 나혜석 모두 신여성이다. 미술계 최초서양화가 1896년生 나혜석 다음으로 여성 서양화가인 1924년생 천경자 도 신여성이다. 학창시절 '신여성'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스쳐갔지만, 인간의 가장 고귀한 감정 사랑도 자유로이 할 수 없었던 여성들, 부모가 정해준 대로 사랑 없이 살아야 했던 여인들, 그녀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연애>, 나혜석은 저서 《조선여성의 첫 세계일주》에서 '아~자유의 파리여~울부짖으며 왜 파리에서 죽고 싶다고 했을까?
그보다 3.1 운동 민족대표 33人에서 친일파로 변절했던 '최린'이 사랑도 변절해 나혜석의 사랑은 유린당했다. 최린에게 유린당했으니 최린이 이름값(?)했다. 그렇게 최린에게 유린당해 쓸쓸하고 비참한 나혜석을 달래주는 것은 첫사랑 고흥남자《녹동풍경》그림이었다. 녹동 그림에 홀로 서있는 외가리, 고깃배도 있으련만 왜 쌍雙(?) '쌍충사'를 그렸을까? 쌍충사는 충열공 이대원 장군과 충장공 정운장군 이 한쌍으로 모셔진 의(義)의 사당이다. 최린에게 유린당하고 쌍(짝)과 남녀간 사랑에도의리가 사무치도록 그리웠을 나혜석...
부산에서 장군과 동료를 구하려 배에 떨어진 포탄을 홀로 품고 장렬하게 순직한 의(義)의 화신 정운의 얼이 있는 곳이다.
미술은 바깥세상을 보고 자기 내면을 물감으로 드러내는 것, 나혜석은 물감으로 사랑의 의리를 갈망했을까, 첫사랑 고흥남자가 그리웠을까. 나혜석은 수원生이지만 그 시절 나혜석의 마음의 고향은 고흥이었다. 윤동주의 마음의 고향이 윤동주 시를 지킨 벗 정병욱이 살았던 광양, 광양이 윤동주의 마음의 고향인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 이런 나혜석의 생애를 미술평론가 윤범모가, 나혜석이 첫사랑 최승구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꾸민 에세이가 《첫사랑 무덤으로 신혼여행을 가다》, 첫사랑 무덤이 있는 곳은 고흥읍 오리정이다. 제목만 보아도 읽고 싶어 진다. 첫 문장이다.
'첫사랑아 내 편지를 읽어다오!'
5. 천경자, 꽃과 여인의 화가
천경자를 미술계에서는 흔히들 '나르시시스트' 라고 말한다. 나르시시스트? 자기애(愛)가 강한 사람이라 한다. 천경자 생가 근처에 있는 고흥의 자존심, 존심당(存心堂)에서 천경자의 자기애가 싹트지 않았을까 지레짐작해 본다. 존심당은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기 前, 3년 동안 고흥현감을 지냈던 김홍집, 조선의 개혁ㆍ개방주의자가 살았던 곳이다.
하여간 나르시시스트 천경자를 고흥 할매아짐은 미친년(?)이라 부른다. 나르시시스트에 어울리는 말은 미친놈, 미친년이다. 왜 그런지 천경자 그림《노부ㆍ老父》에서 천경자 외할머니 모시삼베 실타래 풀듯 풀어본다.
외할머니 그림을 보니, 천경자의 예술적 끼와 씨는 외할머리로 부터 나왔다. 1940년대 그시절 남도에서 여성이 안경을 쓰고 곰방대에 담배를 피고 있으니 말이다. 거기에 어려서 본 고흥의 팔영산ㆍ청정자연이 천경자 미술의 태동이였다.
여자는 남자하기 나름인가? 그 외할머니에 짝, 외할이버지는 천경자를 남장(男裝)까지 시켜 공부를 가르쳤다. 외할아버지는 고혈압으로 발신불수가 된 상태에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의 그림모델도 돼 주었다.
고흥읍 홍교옆에는 해맑은 구슬 옥(玉)이 두개있다. 윗구슬이 옥상리(玉上里)요, 아래 구슬이 옥하리(玉下里)다. 천경자는 1924년 옥하리에서 태어났다. 구슬처럼 귀한 자식 귀자(貴子)를 옥하리 옥자(玉子)라 이름 붙혔다. 성장하면서 천경자 그림에 많이 나오는 여인들, 자화상을 표상하는 거울경(鏡)자로 개명했다. 옥하리 생가를 찾을 때 천경자와 고향이 같은 나도 그녀의 고흥마음을 지레짐작 하며 비밀의 실타래를 풀어본다. 천경자생가를 물어보니 어떤 아짐이 말한다.
아따 우리는 미친년인 줄 알았더니, 오메~ 알고 보니 유명한 그림그린 화갑띠다요~
이녘들이 몰라서 못 알아 본거제~
미국서 숨넘어 갔다등디 영~짠합디다...
그 아짐의 말에 "미칠급(及)자의 의미는 좋은 것인데, 무엇에 몰입 해서 미쳐야 뭐 하나라도 특출 나게 제대로 하는데, 한국에서는 이상하게 '미치다'가 미친놈, 미친년 등 과학적사고에 갖혀 정상과 비정상으로만 보는 저속한 어감으로 들린다' 고 김태길 교수는 말한다. 김태길 교수는 동갑생 김형석 교수, 안병욱 교수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인생철학자라 할만하다.
천경자의 그림을 보면 고흥 유자색에 미친년(?)처럼 머리에 꽃을 꽂은 작품이 많다
. 나혜석처럼 파리와 유럽을 여행하고 몸과 머리가 따로인 스웨덴 출신 할리우드 유명스타 '그레타 가르보' 그림도 있다.
마돈나를 그린 그림도 있다.
그림에서 그레타 가르보와 마돈나는 또 다른 나(我), 바로 천경자 자신이었다. 어려서 배우를 꿈꿨던 고흥 촌가시네였다.
여기까지 1편이다. 남도의 황금여인들 2편에서는 아래의 5명의 황금여인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파리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하는 여인들처럼 우리 가까이, 우리와 함께 살았던 인물들로 선정했다. 6~10 인물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2편에 적을 예정이다.
6. 백수선, 음악극 소록도《섬》, 마리안느 & 마가렛
나혜석? 천경자는《파리풍경》을 그리워한다.
거꾸로, 오스트리아로 귀향한 천사들은 왜 소록도 《녹동풍경》을 그리워하는가?
7. 신은경, 여성앵커의 전설, 88 서울올림픽을 중계한 KBS 前 앵커
나는 수줍은 흙수저였다. 노후준비는 타이밍이다.
8. 거금도 아가씨 ; 이성 작사작곡
사랑엔 약하지만 파도엔 강하다오~🎵 수줍은 첫사랑에 앞가슴이 부푼다오~🎵 전라도 아짐들, 아가씨 선생님
9. 문정희 ; 시인《작은 부엌의 노래》, 남도의 페미니스트
그날의 조선여성 부엌칼, 오늘의 한국여성 작은 부엌의 노래
10. 김유덕 ; 나의 어머니
영웅ㆍ여장부가 따로 있나, 우리 부모님, 어머니가 영웅, 유자마을에 핀 오이꽃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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