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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리와 김누리 ; 계몽주의 vs. 계몽의 변증법

고흥돌문어 2025. 3. 30. 19:11

탄핵이 기각되면 교육부장관 후보로 전한길과 함께 경쟁을 버릴 인물이 있다. '저는 계몽됐습니다' 라고 헌재에서 고해성사를 한 김계리 변호사다.
그러고 보니, 한국교육에는 교학사도 있었지만 계몽사도 있었다.

탄핵이 인용되면 교육부장관으로 추천하고 싶은 인물이 있다. 독일교육시스템을 빗대어 한국교육시스템 개혁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이가 있다.
김누리 교수다.
김교수는 독일 20세기 최고 철학자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을 읽어보라 말한다.

아도르노?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적이 있는 옛 친구 이름처럼 기억이 가물가물한 이름이다.
자본가들의 이익을 확대재생산하기 위해 바보상자 TV와 광고의 속성을 공부하는  '대중문화론' 강의 시간에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교학사와 TV로 자본주의 사회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길들여졌다.

계몽주의와 계몽의 변증법의 차이는 무엇일까?
김계리가 말하는 계몽의 의미는 중학교 사회시간에 배운 것 같다. 사회시험에서 다음 중 고른 것 같다.  이렇게...

Q 다음 중 계몽주의 철학자가 아닌 사람을 고르시오
1) 볼테르 2) 몽테스키외 3) 루소 4) 데카르트
볼테르, 몽테스키외, 루소

시골 중학교에서 암끗도 모르고, 개꿈에 개몽에 계몽주의자는?
소 불따구에 루소와 볼테르 그리고 원숭이 몽키~몽테스키외 그렇게 동물 이름으로 외던 시절이 스쳐 지나간다.
그렇게 4) 번 합리주의자 데카르트를 고르고 외고 그 후론 까먹었다.

오늘의 눈으로, 계몽주의자들이 주장했던 정치체제론을 보니 계몽령이라 주장하는 이들의 세계관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계몽주의자들은 다수의 무지한 대중을 깨우는 계몽군주 王이 다스리는 '절대군주정'을 주장했다. 그러나 교학사나 계몽사와 선생님은 나에게 거기까지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건진법사는 한국의 몽테스키외일까, 몽테스키외 저서는 <법의정신>이다. 

배반을 하고 상식을 말하며 어퍼컷을 날리던 사람이 정권을 잡고, 군인을 동원해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를 깨부수는 몰상식한 행동을 하고도 궤변을 늘어놓은 몰상식이 상식이 되어버린 요즘에, 계엄령을 계몽령이라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뻔뻔스럽게 말한다.

윤석열은 도리도리라도 했지만 김계리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계몽됐다고 말한다.
*계몽(啓蒙)된 이성(理性)인가? 이름도 계리(啓理)다.
계몽주의는 합리적 이성을 중시했지만 그 이성은 우열을 나누고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을 지배하는 도구적 이성으로 변질돼 버렸다.

전한길과 김계리가 교육부장관이 되면 올해 수능시험에 이런 문제가 나오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하겠는가
Q 다음 중 계몽주의자로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독일교육시스템의 철학적 기반이 됐다는 <계몽의 변증법>은 무슨 내용일까?
한국사회가 계몽이 돼야 하는 것은 맞아 보인다. 그러나 그 방법론에서 김계리와 김누리는 다르다. 김계리 변호사가 합리성, 도구적 이성에 의한 계몽이라면 김누리 교수는 정반합 진보에 의한 계몽이다. 사람이 자연과 사람을 정복하고 지배하고 공생하는 계몽이다. 남을 비판하고 계몽시키려 하지 말고 인정하고 자기비판과 자아성찰을 통한 계몽이다.  
결국 오늘에 걸맞는 계몽은 자기혁명이요 다양성을 인정함에 있다.

국가를 유지하는 세 가지 시스템이 경제ㆍ사법ㆍ교육시스템이다. 그중에 미래를 위한 근간은 교육시스템이다.
내가 살았던 야망의 학창 시절은 오늘 보니 경쟁과 야만의 시절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야만성이 더해저 파시스트를 확대재생산 하고 있다고 김교수는 말한다.
독일이 나치를 처단했듯 한국도 해방 후 친일파를 처단하지 못해 나라가 이모양이라는 말은 참 많이 들었다.
오늘 보니 친일파를 처단하지 못한 것에 더하여 교육, 교육이 문제였다. 교육개혁이 시급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담대한 대담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고 보니, 합리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사회에서 합리적이여야한다, 공정해야 한다 한다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다.
남도에서 천진난만하게 자란 나, 서울살이 하며 합리적, 합리적 하길래 합리적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속으로 누구를 위한 합리성이지? 누가 만든
합리성이지? 나는 감정이 앞서고 합리적이지 못한가? 합리성은 행동하지 않는 겁쟁이들의 변명이 아닌가? 합리성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눈속임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참 많이도 했다.
그 합리성이 남도의 지푸라기 감수성을 죽여버렸다.

김누리 교수가 한국사회의 그 합리성과 공정을 비판한다. 그러고 보니 남도사람 아버지에게 난 단 한 번도 '합리적'  '공정'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사람은 본시 '평등' 하고 '정직' 해야 쓰니라~
평등과 정직은 아버지한테 많이 들어봤다.
하지만 어쩌랴, 나도 야만적 경쟁교육시스템에 이미 뇌가 길들여져 요즘은 왠지 모를 열등감이 나를 괴롭힌다.

순천만은 나에게 사람과 자연이 공생하는 계몽의 변증법을 일러주었다.
짱뚱어는 계몽의 변증법을 말해주었다.
물고기 중에 육지동물에 가장 가깝게 진화한 짱뚱어는 진보가 무엇인지 말해주는 듯하다.  
용산의 시대를 끝내고 용산의 시대를 기다려본다.
남도 용산의 기운이 온누리에 퍼지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