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돌아왔다.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저자가 '광주문화재단'에서 '전라도닷컴' 으로 돌아왔다.
《남도와 사랑에 빠지는 인문학기행 》을 나는 쓰고있다. 금가락지가 떨어진 한국의 3대 명당 중 하나인 금환락지(金還樂地) 구례 토지(吐指)면 고택과 '반지' 의 연관성이 궁금했던 때였다. 반지가 무엇을 '표상'하는지도 궁금했다. 권력인가? 사랑인가? 사람인가?
표상(表象)? 알고 보니 별게없다.
아이때는 먹는 밥상!,
학창시절에는 표창!
나이들 수록 뇌의 표상!
아이는 배부르고 똥오줌만 잘 가리면 해 맑은 웃음이 나온다. 어른은 표상만 잘하면 해맑은 웃음이 나온다, 는 나의 삶의철학이다. 무엇을 보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표상이다. 이미지에 더하여 뇌의 연상작용이 표상이다.
나도 얼마 전에 표상을 알았다. 나에게 '전라도 문화예술 사랑지기' 로 표상되는 그가 돌아왔다.
그는 광주문화재단 대표이사직을 퇴임하고 원래 있었던 그자리, <전라도닷컴>에 편집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영화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인가? 王 하면 권력이 표상되는가? 표상은 각자의 몫이다.
그는 자기 좋아서 즐거운 일에 몰입하여 뇌가 항상 즐거운 사람이 장땡! 왕이다, 는 삶을 철학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왕이로 소이다》 영화도 있지 않았던가.
그의 이름은 '황풍년' 이다. <전라도닷컴> 기자이자 편집장이다. 광주에 가면 "동상 왔능가~ 하면 아따~풍년이 왔네요~"로 맞장구를 항꾼에(?) 함께 처주고 싶다.
<전라도닷컴>은 전라도가 고향이거나 전라도 사람 만 좋아하는 잡지요 온라인 사이트인가? 아니다. 경상도 친구가 좋다고 구독신청을 물어온다. 나는 이친구와 술자리에서 정치이야기만 나오면 항상 마지막은 이렇다. "답도 없는 이야기 이제 그만하자~ 술한잔 더 받어라" 하고 껄적지근한 잔이 오간다. 구례生 정지아 작가가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친필로 써준 그 전라도 말이 생각난다.
"긍게~사람이제~ 그래도 갸가 사람은 나서야" 가 무슨 말인지 직장에서 실감나게 해주는 경상도 친구다.
이친구가 전라도닷컴을 구독 하겠다고 한다.
왜 일까? 항상 힌국인이 제일 많이 보는 신문을 보던 친구다. 신문사설에 밑줄 까지 긋는다. 대한민국 No.1 이라면 떠오르는 대학출신이다. 나와 함께 관악산등산을 자주 가던 친구다. 몇 년간 기성 신문을 보았더니 뇌가 딱딱해진 느낌이라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신문헤드라인은 억억억~하며 선정적ㆍ자극적이어야 하고 내용은 이성적ㆍ논리적이여야 신문이 잘 팔린다. 그런 신문을 1년만 읽어보자 뇌가 어떻게 바뀌는지...
그 친구가 뇌가 몰랑몰랑 해지고 싶다고 한다. "그래~ 뇌가 몰랑몰랑 해지면 얼굴은 숭굴숭굴해지고 인생은 둥글둥글 해븐다 아이가~ "로 나도 화개장터 추임새를 넣어준다. 가끔 아무 것도 아닌일에 생각이 다르면 자기도 모르게 욱~하거나 화를 내거나. 불면증에 시달리는 때도 있다, 고 친구가 푸념한다.
그렇다. 바로 그거다. 이 친구는 뇌인지과학적으로 다양성과 다채로움을 '상실' 한 것이다. 상실이 무엇인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인간의 본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상실의 시대>라는 말도 있었던가?
빼앗긴 뇌에도 봄은 오는가? 하고 자괴감만 들 것이 아니다. 상실한 뇌는 다시 개발하면 된다. 미개발 영역을 개발하면 뇌세포가 살아난다.
돈이 돌지 않는 세상에 주식이나 부동산 재개발에 함몰된 뇌를 재개발 하는 것이다. 전라도 닷컴에는 부동산 땅따먹기 기사는 없다. 전라도닷컴 뇌섹남의 글을 읽자. 다시 학창시절 처럼 친구 뇌가 잘 돌게 나는 보템이 되는 말도 해주었다.
인간의 뇌는 신기하다. 신체는 어느 시간되면 성장을 멈춘다. 뇌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죽을 때까지 성장한다. 나이드니 뭘~자꾸 까먹는다, 는 것은 골프에서 왕년에~ 하는 것처럼 그냥 웃자는 핑계다.
보수와 진보? 아니다. 진보와 보수라고 거꾸로도 써본다. 《선악의 저편》에서 거꾸로도 생각해보자. 기성언론이 고정관념으로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 칼럼리스트를 동원하여 고정관념을 퍼트린다. 그냥 '넓게 다시 퍼트린다' 하면 될걸 "확대재생산 한다' 라는 말도 써본다. 공장에서 물건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디지털 폭식사회》에 수많은 정보와 지식들이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길들이기, 되물림 이라는 단어들도 스처간다. 신문기사ㆍ칼럼에는 어려서 우리 어매(?) 어머니 말로 '보추때기 없는 말들이 천지다'
무학(無學) 인 어매 말이나 대학(大學)인 칼럼리스트 말이나 거기서 거기인데 말들이 너무 (고)것 참 (이)상하게도 고상(?)하다. 고상하다는 말의 뜻은 누가 규정하였는가?
수 많은 예들 중에 하나를 들어본다. 어려서 놀이터에서 놀다가 어디서 무릎을 깽겨(?) 다처오면" 어매는
오메~ 오마~ 내 '새끼' 야~
내 갱아지 어디서 이라고 깽겨 왔는가?"
그러셨다. 나랑 강아지랑 같은 개 새끼인가? 하고 가웃둥 했던 때가 있었다. 강아지도 황소도 우리집 식구였다. 공존(共存)이다. 그때는 '새끼' 라는 말이 그렀게 정겹게 들렸다. 나도 커가며 학습하며 그새끼가 이새끼로...그 어감이 점점 변해갔다. 그리고 그 정겹던 '새끼' 라는 말은 이새끼들 하며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논란까지 일으키게 되었다. 사람과 가축이 공존하며 살때 썻고 자식새끼들 연걸리듯 할 때 쓰던 그 새끼라는 말이 어떻게 현대도시인에게는 그런 어감으로 들리는가? '이새끼들 승인 안하면 바이든 날리면' 전국민 듣기평가(?)의 또다른 미스테리다.
왜 일까? 언어는 인간의 본질과 심상을 드러 내는데 한계가 있다. 사회적으로 학습된 언어는 지배권력이 계층을 나누고 지배하는데 악용된다. 지배하려면 구분해야 하고 구분에 우열을 가리고 그 수단 중에 하나가 언어다.
쉽게 말해 새끼라는 말을 쓰거나 사투리, 특히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촌스럽거나 폭력적이거나 이상한 자들이 쓰는 언어라고 사회적으로 '규정' 해 버린 것이다. 규정은 규칙이되고 규칙이 정교화 되면 善과 惡을 가르는 규범이 되고 이말을 밥먹듯이 쓰는 사람들은 선악을 구분하는 일에 종사할 가능성이 높다.
나도 서울살이에 촌스럽고 이상하다, 는 말을 많이 들었다. 전라도 촌에서는 촌스럽고 이상하다는 말을 들어 보지 못했다. 영구나 칠득이 같은 바보도 촌스럽거나 이상하게 보이질 않았다. 그저 짠할 뿐이였다. 서울에 오니 이상하게, 이상하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이상하다는 말에는 내말과 생각만이 정상이다는 무서운 지배권력의 못된(?) 속성이 숨어있다. 나의 말과 생각은 '다르다' 가 아니고 특이하고 이상하단다. 전라도닷컴에서 기획특집으로 왜 '다르게' 라는 말을 썼을까? 흥미롭다.
지배권력? 보이는 재벌이나 정치권력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구조 ; 규율이나 제도나 법이다. 보이지 않으니 더 무서운 법이다. 보이지 않는 지배구조를 실행해 옮기는 사람들은 구조를 만든 그들이 아니다. '마징가제트' 에 나오는 기계수(首)와 같은 인간들이다. 헬박사와 아수라백작 명령대로 자기가 기계수(首) 인지도 모르고 약자를 괴롭히는 기계수다. 마징가제트는 일본천재가 일본 사회를 보고 미래상을 만화에 투영한 작품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착한이, 나쁜이 선악(善ㆍ惡)구도로만 봤다.
그래도 마징가는 '인조인간 로보트~' 사람 쇠돌이가 조종이라도 했다. AI시대에는 AI가 글쟁이에 시(詩)까지 쓰니 사람을 조종할 판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언어학의 석학중에 석학, 미국 (놈)이라 부르기에 너무나 (촌)스러운 촌새끼(?) 이렇게 연상하여 외면 까먹지 않을 '노엄 촘스키'를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면된다.
더 궁금해지면 노엄촘스키의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그리고 《지식인의 책무》를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나도 헬조선(?)이라는 보이지 않는 사회구조(헬박사)에서 마징가 제트의 저 기계수들과 다를게 뭐지? 길들여 졌나? 하고 자괴감이 들때도 있었다. 저 기계수들도 컴퓨터는 잘 다루는 나름 지식이 있는 전문가다. 영혼이 없을 뿐이다.
촘스키는 미국사회에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책에는 사람의 언어와 세상의 대한 '진실' 과' '진심' 이 뭍어 있다고 나는 판단한다. 중학생 딸아이 영어 문장연습 힉원교재에 노엄촘스키 말이 있다. 노엄촘스키 언어철학 결론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있다.
전라도 방언 사투리가 왜 왜곡되어 들리는지, 뇌 인지과학적 이유에 대해 딸아이 학원교재까지 동원하여 설명했다.
요즘에는 문화와 예술의 나라 《프랑스와 사랑에 빠지는 인문학기행》을 읽는다. 예향 《남도와 사랑에 빠지는 인문학기행 》을 쓰다보니 언어에 관심이 많이 간다. 전라도닷컴에서도 전라도문화에서 언어에 대해 많이 언급했다.
'봉주르~ 몰블랑~' 하는 프랑스말 불어와 '그래 불엇어~ 저래 블어서~긍게롱~' 하는 말의 어감차이는 왜 생긴 것일까? 둘 모두 그 보드라운 철자(기표) 이지만 프랑스말과 다른 대접을 받고 있는 전라도 사투리 간에는 어떤 《오만과 편견》이 숨어 있을까? 그냥 웃자니 궁금해 진다.
다시 왕의 귀환이다. 황풍년 편집장은 <전라도닷컴>과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과 《풍년식탐》책을 썼다.
전라도 사람과 자연, 그리고 문화에 맛과 멋을 널리 보급하고자 오늘도 전라도 그 무엇에 몰입하고 있으리라.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 미학, 그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바로 다양성과 다채로움이다. 한국인 호남인이 가진 다채로움이 아니라 '사람' 이니 가지는 다채로움이라 말하고 싶다.
나도 무등산을 가보기 전에 무등산은 단조로운 산으로 표상됐다.
무등산이 그냥 광주에 봉우리 하나있는 우뚝 솟은 산인줄 알았다. 언론이 자극적ㆍ선정적으로 퍼트린 '선동열 무등산 폭격기'를 연상했다. 무등산은 선동렬 구질처럼 직구ㆍ슬라이더ㆍ커브 딱 3개로 단조롭지도 않았다. 빠르지도 않는 다채로운 느림의 미학이 자연에 뭍어나는 곳이 무등산이였다. 구종이 다양한 조계현 투수의 8색조가 더 어울린다. 무등산은 한마디로 다채로운 정원산이요, 두마디로(?) 전라도의 미학을 품은 산이였다.
무등(無等山)의 '無等'의 뜻이 무엇이겠는가?
전라도닷컴이다. 경상도나 충청도나,여자나 남자나, 대리나 부장이나 '많은 사람이 전라도닷컴과 사랑에 빠지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나는 다시 《남도와 사랑에 빠지는 인문학기행》을 오늘 퇴근 후에도 쓰련다.
이름도 그냥 풍년 보다 더 농익은 가을들녘의 황풍년이다. 남도 호남평야가 올해 가을에도 황금빛으로 누렇게 익어가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했던가?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수단이 말이다. 전라도 말에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감탄사도 형용사도 다양하다. 똑 같은 말에 정상과 비정상 우열을 가리질 않는다. 다양할 뿐이다.
"웃녘에 풍년이 왔네~
아래녘에도 풍년이왔어~
항꾼에 풍년이 왔네~
전라도닷컴으로 다시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