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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족보유산 답사기행 2 ; 족보 속에 역사는 흐른다

고흥돌문어 2025. 2. 24. 11:30

♤ 인문학?

<남도와 사랑에 빠지는 인문학> 기행을 쓰는 나는, 人文學이란 무엇인가?
그렇게 나에게 물어봤다.
왜 人文고등학교~인문고라는 말을 썼지 그런 질문을 하고 조용필 노래 <어제, 오늘 그리고> <돌고 도는 인생>을 반복해서 돌리고 돌려 듣고 가던 길이 떠오른다.
남도로 가는 하행길이었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으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다.
흔히들 문학(文)과 역사(史)와 철학(哲), <문사철>이라고 말하는 인문학이 무엇인지 하행길에 유튜브 강의도 듣고 간다.
강의를 듣고 가니 소록도 시인이라 불리는 한하운이 가도 가도 끝이 없다는 반도 끝 <전라도 길>, 그 길이 금방이다.
그러나, 돌리고 돌려 들어도 이박사 저박사 한다는 교수들이나 박사들이 말하는 인문학 정의는 어렵고 애롭다.
그저 긍갑따~그런다.
인문학에 정의가 내 안에 느껴지지 않는다.
박사들 말이 뻔~한 말 같기도 하고, 했던 말 또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남도 어매들 말로다 심심하다.

어머니는 음식이 싱거울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심심하다~심심해 !
장독대 가서 장 좀 퍼오니라~

엄마 생각도 난다.
그래서 고흥촌부(村婦) 큰누님에게 인문학이 무언지 물어봤다.
누님이 범어(梵語)에서 왔다는 아이마다~하며 이렇게 말한다.

아이마다~
딴 거 파지 말고 집안 족보나 좀 파바라~
족보도 모름시롱 인문학 인문학 그라믄 헛똑똑이! 아니것냐

그렇다.
남도의 조상으로 느껴지는 영화 명량에 진구할배 말로다, 그렇지~바로 그거네다.

헛똑똑이!

인문학은 헛똑똑이가 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헛똑똑이 인생으로 살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왜 시골누님은 족보를 공부해 봐라~도 아니고 파봐라~말 하는가?

그렇다.
족보를 공부하는 것은 땅을 파는 것이다. 조상들이 남겨 놓은 땅의 흔적을 찾아 뿌리를 파는 것이다.
보잘 것 없지만 있어야할 흔적이요, 알아야할 사람(人)의 역사다.

人文學에 왜 사람 인(人) 자가 들어 가는가?
종교는 신의 의지하여 나는 어디로 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우주의 진리를 밝히려는 믿음이요,
인문학은 문학과 역사와 철학, 文史哲로 그것을 밝히려는 학문이다.
인문학은 사람(人)이다.
어쩌면 고향 땅이 우주의 진리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우주에서 떨어진 별(운석)이 사람을 닮았다.


♤ 역사란 무엇인가?

고흥 두원中 때부터 내가 다음中학교를 다니는 건지~다음中 다음 중에 고르고, 정해진 답에 수많은 사지선다형을 수 없이 고르고 골라 나는 서울로 갔다.
어매들 말로 큰학교(大學), 아버지가 그토록 바라던 대학을 갔다. 아버지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시니 한번 가보기는 해야겠구나~그런 심사도 있었다.

아버지는 법대나 행정학과를 바라셨지만, 외우고 외는 건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아버지 몰래 신문방송 학과를 지원했다. 촌놈이   테레비 색시(시악시~)들한테 홀딱 반한 마음도 있었다.
한 때는 호로자식 될 뻔했다.  
아버지는 입학식날 서울대병 걸려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큰형님과 함께 서울로 올라오셨다.
입학식 날에는 양복을 입으셨고 졸업식 날에는 중절모를 쓰셨다.

후에 알게 됐다.
남도 부보네들이 그렇게도 자식들에게 못 배움을 대물림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은 그 역사의 뿌리가 임진왜란 일지도 모른다.
이순신 장군이 '若無湖南 是無國家' 라 했듯 애쓰고 나라지켜 놓으니, 전쟁 때는 무기력 하거나 도망 간 그들, 한양의 王과 양반선비의 쌈박질은 나라를 또 누란지위에 빠트린다.

병자호란이다.
청나라 기마병 무서워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반정의 인조.
조선군은 전패했다.
그나마 호남에서  지원군이 올라간 광교산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 인조를 따르던 무리들에게 고흥 류씨는 모함을 당했다. 광해군 스승, 고흥 호산리 사람 조선 최고의 스토리텔링 대가 류몽인은 죽임을 당했다. 광해군을 다시 복위 시키려 한다고 죽였다. 오늘에 호산리 종가집 류씨 장손은 우리 조상이 선조들 말을 이야기로 꾸민 거라며...
날 좀 보소~이것 좀 보소하네~
우리 할배 하내 책 좀 보소 하네~

<어우야담>
고흥읍 호산리 호동마을에서

남도에 뿌리내린 경주 이씨 애일당공파 월산할배도 이렇게 족보를 이야기로 꾸며 후손만대에  남기려 디지털 족보책을 쓴다.
<족보 속에 역사는 흐른다>
월산할배가 블로그에 남긴 한숨이 정겹다. ^^

월산할배 블로그 족보이야기 글에서

고흥사람들이 13개 면에 선정비까지 새워주며 잘했다고 칭송하는 갑오개혁의 주역 고흥현감 김홍집!
그를 왜 고종과 서울 양반선비들은 암살했을까?
그것도 고종이 직접 죽이지 않고 암끗도 모르는 보부상들 시켜 돌맞아 죽게 했는가,
남도 어매들 말로, 아이고~아이고 이 아까운 사람아~

김홍집 선정비가 있는 고흥향교에서

고종이 고흥 향교에 선정비가 아직도 있는 김홍집 말만 들었어도 일본에게 그리 당하지 안했을 터, 고종은 김홍집 총리대신을 파직하고 이완용을 총리대신으로 등용한다.
고종과 이완용 을사오적은 임진왜란 300 여년 후에 백성들이 또 일본에게 당하고 일본말을 배우게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고흥 도화 아가씨를 각시삼아 임자라 부르는 벌교사람 나철은 관직을 그만두고 을사오적 암살단을 만든다.

1941년 고흥공립보통학교 수업시간, 일본어를 배우는 학생들, 운대리 갑재민속전시관에서

한편 지구 저~짝 유럽에서는,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했다. 생텍쥐페리는 미국으로 건너간다.  별나라(행성)이야기 세기의 명작동화 <어린왕자>를 출간한다.
1943년에 출간한다.
그것도 고흥 두원에 별이 떨어진 11월에 출간한다.

♤ 별에서 온 그녀

TV드라마에 <별에서 온 그대>가 있다지만 나는 더 이상 바보상자를 믿지 않는다.
<어린왕자>가 일러주는 양이 들었다는 상자를 나는 이제 믿는다.
그녀는 양(羊)이요 양(孃)이다.
그러고 보니, 양은 영어로 Sheep요 ~그녀(She)다.  
우리말과 한자와 영어의 뿌리라는 범어(산스크리트어)의 신기함도 느껴진다.

<어린왕자>에서
1943년 11월 23일 오후 3시 47분!

고흥 두원면 성두리 야산에는 별(두원운석)이 떨어진다.
여산 송씨 송규현 씨와 경주 이씨 이백진 씨가 줍는다.
그 별똥별 그녀는 일본인 교장에게 일본으로 강제이송 되서야 고향으로 돌아왔다.
김대중 정부 때 일이었다.

환갑을 넘기고서야 귀향했다.
현재 진본은 대전 국립지질 연구소에 보관돼 있다.
별(운석)은 그 형상이 딱~사람 두상(頭象)이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사람이다.

영화 <귀향>

귀향한 그녀다.
송수권 시인은 그녀의 춤을  파천무(破天舞)라했다.
그 의詩 <파천무 ; 두원운석>에서, 그녀는 내가 태어난 1943년 같은 해에 고향 고흥 성두리에 떨어졌다, 라고 했다.
별에서 온 그녀다.

임란 후 일본과 양반선비들에게 당하고 당해서 남도 부모들은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애환이 손자에 손자까지 내리고 내려 왔을지 모를 일이다. 남도에서 배움이 얼마나 간절하고 배움터가 얼마나 소중했던가

1941년, 일본인 교장과 고흥 학생들
두원면 운대리, 옛 두원운대초등학교

그 남도의 부모네들의 웅숭깊은 마음을 문학적으로 승화하려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이청준 소설가와 송수권 시인이다.
이청준은 장흥 진목리 경주 이씨이며, 송수권 시인은 고흥 두원 학림마을 여산 송씨다.  
이청준 현대문학의 거목, 眞木리에 거목(巨木)은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배왔다는 내가 문학을 통해, 
못배운 나의 부모네들의 사람다운 맨얼굴과 속살이야기를 이 사회에 다 전(傳)해주지 못하고 어머니 곁으로 가는 것이 아쉽다

시간을 거슬러 서울 1992년 봄,
1학년 교양영어시간 첫 시간에 1941년 그날에 고흥 아이들처럼 나는 책상에 앉아있다.
영어로 된 이 책이 나온다.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가 뭐긴 뭐여~사지선다형으로 정해진 것만 고르고 시대순으로만 나열하는 거지 뭐...
한 때는 백골단이 운동권 학생들 소굴을 압수수색 하다보니 이책이 나와 한국정부에서 금서로 정했다.
정부가 영국 외무성에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영국학생들은 다 읽는 책인데요

네이버에 많은 표지소개 그림이 나오지만, 나는 위 표지가 좋다.
흑백사진과 바위(돌)과 사람이 있는 석계(石溪)의 의미가 있는 위 그림을 붙여본다.
할아버지에 할아버지를 일곱번 시간을 거슬러 올라 21대 위에 할아버지인 석계(石溪) 이봉수 장군 할아버지가 그림 속에 있는 느낌이다.

책의 압권은 고흥스러운 생선(구이)좌판 비유에 있다.  '역사는 과거와 미래의 끊임 없는 대화' 라는 말은 요즘엔 초등학생들도 안다.  
조기교육으로 학원가서 배운다.
그날에 배움에 간절함 향교는 오늘에 탐욕의 학원으로 변했다.
생선구이 좌판에 조기를 구울 것인지~양태(장대)나 서대를 구울 것인지, 주인장이 선택한다.

그렇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역사학자 영국 캠브리지대 역사교수 E.H 카(Carr) 는 생선좌판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한다.

수 많은 사실(Fact)은 망망대해에서 노는 수 많은 물고기와 같은 것이다
어부가 어떤 고기를 잡아 어떤 고기를 생선구이 좌판에 올려 놓을 것인지는 역사적 문제와 같다
사실(Fact)은 망망대해 물고기요,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은 좌판에 놓인 잡힌 생선과 같은 것이다.
역사가는 생선 굽는 생선집 주인장이요, 후대 사람들은 손님이다.

고흥 생선구이집에는 무려 20 여가지 생선구이가 있다. 생선에 따라 굽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쉽게 말해, 역사는 역사를 기술하는 역사가의 관점(史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족보도 그렇다.
책에 생선구이를 예로 든 캠브리지대 역사학 교수에게 고흥 생선구이를 택배로(?) 보내 줄 일이다.

고흥 생선구이는 조선수군 화포장 이봉수 장군이 화포를 만들때 넣은 참나무(眞木) 참숯으로 구워내 맛있다.
족보역사를 파는 맛이 개미지다.
문사철(文史哲) 삼합(三合)으로 구어낸 맛이다.
(족보)역사를 꼭꼭 씹어 먹어야 겠다.
고흥 생선구이 먹듯 머리까지 뼈속까지 꼭꼭 씹어 먹어야겠다.

화약 = 염초 + 목탄 + 유황
조선수군은 어떻게 염초를 대량으로 제조 했을까?
화포를 배에 싣고 있는 화포군, 영화 <한산>


다음 글 <영화ㆍ동화 속에 족보는 흐른다>에 계속....

조용필, <어제 오늘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