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 들면 혼자서도 잘 놀아야 한다, 외로움 수업이라고도 말한다
남쪽 바다 바위틈에서 돌문어가 혼자서도 잘 놀듯, 나 돌文語도 내 방에서 혼자 신명나게 글놀이를 해본다
오늘은 입으로 돌文語 칼럼을 써본다
말(語)을 해 혼자서 입으로 글(文)을 쓰니 文語다
휴대폰 좌측 맨아래 마이크 버튼을 누른다
AI 음성인식 기술을 활용해 큰소리로 글을 써본다
내 말이 빠르게 글로 변한다.
사투리도 인식하는지 써본다.
아따~ 허벌나게 좋구만 이...
기존에 국어사전 맞춤법 체크는 사투리를 인식하지 못하고 사투리를 오타로 체크했다
AI 음성 신기술은 사투리를 차별하지 않는다, 그대로 옮긴다.
눈으로는 지식의 창고 뉴미디어
YouTube를 시청한다, AI가 영어로도 자동으로 바꿔준다.
뉴미디어 AI 시대 인간은 능동적으로 변할것인가, 아니면 수동적으로 변할 것인가?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지만
사람은 기술을 따라잡지 못한다.
사람들은 휴대폰 카카오톡으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를 기술의 발전으로만 이해하고 그 기술에 담긴 사회문화적 의미에는 무관심하거나 까막눈이다.
애플과 삼성은 사용법이라고 기술적 매뉴얼만 가르쳐주고 매년 신버전을 출시하여 돈을 쓸어담는다.
그 기술에 담긴 사회 문화적 의미는 절대 가르쳐 주지 않는다.
AI 음성인식 신기술에 담긴 사회문화적 의미는 무엇인가?
말과 글은 같아야 하는가 달라야 하는가?
MBC 100분 토론 <우리사회 어디로 갈 것인가?> 에서 보수논객 조갑제는 말과 글은 달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보논객 유시민은 말과 글은 같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초로 한글 가로 쓰기를 했던 잡지 <뿌리 깊은 나무>를 발간한 보성벌교사람 한창기 선생.
선생은 말과 글은 같지 않음에 물음표를 달았다.

조선시대부터 뿌리 깊게 내려온 성리학 사대주의 그리고 선비사상.
글은 공유와 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글 읽는 양반과 글을 모르는 상놈을 구별하고 차별하는 수단으로 변질 돼버렸다
남도 촌놈인 내가 서울에서 느꼈던 그대로다.
고상한 외래어와 표준말을 쓰는 서울사람 말보다 남도 촌사람들 말이 따지고 보면, 유럽 석학들이 하는 말이나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훨씬 가까웠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그것을 반증하고 있다.
우리나라 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은 세계적 언어학자, 미국 촌놈에 촌새끼(?) 노암 촘스키의 책도 생각난다.

극우 유튜버나 정광훈의 말에 광화문에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참 신기했다
보수 유튜버들은 눈이 침침한 어르신들 보라고 글자도 이렇게 큼지막하게 쓴다.

탄핵인용이냐 기각이냐를 놓고 그러더니, 또 거짓말을 밥먹듯 해도 조회수 1위다.
왜 그럴까? 인간은 위대한가?
인간은 사회적, 정치적 동물이라고 말한다, 사회적ㆍ정치적 이기 전에 동물이련만...
그 오만한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는 말과 글의 힘이다.
한글은 언문(言文)이다.
한글을 쓰는 한국인의 말과 글은 같아야 하는가 달라야 하는가?
말과 글이 달라졌다, AI 음성인식 신기술은 말과 글은 같아야 한다고 나에게 일러준다.
AI 신기술이 담고 있는 사회문화적 의미다.
사회문화적 함의(含意)라고도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학자들은 말한다
앞으로 AI 음성인식 기술로 입으로 글을 써야겠다.
말하듯 글을 써야 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