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상? 사자상?
해태상은 없다.
자랑스러운 순고인.
호영이란?
고교 등산 모임에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던 동창이 승진을 했다
나 같은 것도 가따 붙이면 이야기 거리가 되네 이...
해태인가 사자인가 글을 쓰고 순천고 정문을 가보았다. 순천고 정문에 해태상이 없다. 순고 체육대회 후기 사진을 보니 정문에 있었던 해태 두 마리가 교정으로 옮겨졌다. 학창시절에...
'선생님 우리는 해태타이거즈를 좋아하니, 해태상이 있는 건가요?
그렇게 질문하니, 니 어디서 왔냐길래 고흥(공~)서 굴러 왔능디요~하니, 선생님이 하나둘 쇗(?)~할 때까지 앞으로 나오란다. 느그 아부지 생각해서 뻘생각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라 산다. 그분도 고흥 분이셨다. 작년 이맘때 광양에서 돌아가신 고교1학년 여산송 씨 은사님이다. 이순신 장군 곁을 끝까지 지켜준 송희립 장군을 비롯하여 송대립, 송정립 형제의 영혼이 숨 쉬는 재동서원이 있는 동강 분이셨다. 그날 동강 선생님께 꿀밤 맞은 추억이 아련한 해태상이다. 해태타이거즈와 해태상~?
어느 날 벤또를 집에 두고 왔다. 자치방 할머니가 교문에 까지 왔다. 할머니가 느그학교 대문짝에 호랭이 맹키로 싸납게 생긴 거 있더라, 그렇게 말씀하신 추억이 담긴 정든 해태였다. 그러고 보니, 중국産 해태는 뿔이 있는데 한국의 해태는 뿔도 없다. 할머니가 호랭이로 보았을 만하다. 그날밤 할머니는 (호)랑이는 (영~)이 있는 동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영(?)이 무엇인지 세월이 지나도 영~모르겠다. 새깨미에 괴~라 불렀던 고양이도 영~이 있다고 미물이라고 시피보믄 안된다고 할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우리 할머니는 無學이시지만 있는 걸 있는 그대로 보는 분이셨다. 거짓말하면 천벌, 천벌을 받는다고 노상 말하는 분이셨다.
어려서 유치원 선상님(?) 할머니는 내 이름 '재혁'을 <재학><재핵>이라고 발음하셨다. 순고방송 엠뿌가 온 교실에 들려온다.
이재학, 이재학 학생 교문에 와서 도시락 가져가시오
교내 방송에 또래친구 < 이재학>이 갸웃둥 달려갔다. 나는 그날도 재혁스럽게 도시락을 까먹고 영그적머리 없이 학교에 왔다. 할머니가 정문에서 우리 손지 아닌디요, 우리 손지는 즈그 아버지 닮아서 눈쎕이 찐하고 호랭이 맹키로 눈이 모락시롭게 똘망똘망 한디요...
그렇게 말했다던 애잔하고 애틋한 할머니의 情이 담긴 호랭이상이다.
그 해태상이 정문에서 사라졌다.
나이 들만치 든 지금 생각 해보니, 정문에 왜 해태상을 두었는지 물음표다. 그 시절엔 궁금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궁금해졌다.
굳이 한국産도 아닌 중국전설 속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을 순고정문에 왜 두었나, 모르겠다. 중국 동북면産 상상의 동물을 한국 남도의 동부6군 자손인 순고생이 아침 등교 때마다 왜 보게 했는지 모르겠다. 습지가 있는 남도에는 호랑이가 많이 살았다. 개구멍도 주인의 안전을 끝가지 지키다 개구멍으로 들어간 남도의 누렁이와 백구(白狗)가 만들어 낸 말이다. 그래서 남도 사람들은 주인을 못알아보는 개를 미친개라 한다. 개 만치도 못하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유치환의 시 깃발에 이상(노스텔지어)에 맨 처음 단 그는 누구인가~그렇게 맨 처음 해태상을 순고정문에 단 그는 누구인가? 궁금하다.
교가처럼 큰 이상 품고 자라 대학 가고 정치인과 판검사 많이 되라고 순고에도 국회와 검찰청 정문에도 해태상을 두었을까? 부모들이 못 배운 한(恨)을 큰 사람 돼 풀라는 것이었을까. 상상 속 동물처럼 큰 이상 상상의 나래를 펴서 순고의 슬로건, 오늘도 세계를 주름잡으라는 의미였을까. 낙타의 짐을 지나 사자의 용맹한 눈을 지나 그을린 세월의 흐름에 교정에 비석이 나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나는 마눌님 빤쓰라도 주름잡고 있는가
해태상 보기가 예전만 못하다.
껄적지근한 작금의 사회다. 그렇다고 정ㆍ관계 중요기관 정문에 턱허니 서있는 해태상을 니체의 망치로 깰 수도 없다. 상징조작이니 하며 부정할 수도 없다. 현대의 시각이나 잣대로 과거의 역사를 재단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도 있다. 나의 과거를 부정하는 나에게 나의 미래는 없다. 니를 대학가게 해주고 키워준 고마운 학교다. 미우나 고우나 나는 순고인이다.
해태상은 척박한 시절 나의 아버지상(象)이자 나의 자아상이었다.
해태는 법과 정의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국회, 법원, 검찰 등 법과 관련된 기관에 상징물이다. 그런 해태상이 있어 순고가 법조계나 정ㆍ관계 인물을 많이 배출했다. 해태상은 요즘 신간《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처럼 생물학 진화론 학문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가 매일 먹고사는 물고기와 같은 존재하지 않는 존재다.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이었으나, 우리 순고인에게 큰 이상을 품게 한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순고인의 영(靈)과 혼(魂)이었다. 하여간, 물고기는 왜 존재하지 않을까?
해태의 또 다른 상징은 방화신수(防火神獸)다. 해태는 火氣를 억누르는 영적인 짐승이다. 물먹는 하마처럼 해태가 불을 집어삼킨다. 한여름에 순고산악회 관악산 무너미고개 갈 때, 관악산은 火氣가 있는 산이라는 표지판이 불현듯 떠오른다. 관악산에서 경복궁으로 오는 화기를 없애려고 광화문에도 해태상이 있다. 불을 억누르는 氣가 있으므로 소방관이 입는 정복에 마크(깃표)에도 해태가 있다고 한다. 국회 해태상 지하에도 해태의 소화기(?) 노블와인이 뭍혀있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의사당 위에 왜 태권브이가 있을까? 아이들에게 꿈을 주려고 와인을 태권브이로 둔갑시켜 국회에 태권브이가 뭍여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그날 아이의 눈에보인 태권브이 (주먹)은 오늘을 사는 어른에게 어떻게 다가오는가
그러고 보니, 송년회 때 본 관악소방서에 근무하시는 선배가 태권브이처럼 떠오른다. 무언가 직감적으로 벌밭에 뻘소리를 잘하고 꼬막맛 같은 짭조름한 성품에 땡기는 맛이 있었다. 술 한잔 두 잔 말벌 술이 들어가면 횡설수설의 대가가 된다. 유명신문 사설 제목에도 <횡설수설>있다. 다시 술 한잔하고 싶은 호랭이에 호영? 호형호제 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순고동창회 모임에 가면 변호사나 의사 뒤에 <사>자(?)가 들어있는 명함은 하도~ 많이 봤다. 그 이름을 사사건건 다 외기가 어렵다. 하지만 참 정겨워 보이는 이 선배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송년회 정겨움에 취해 해롱해롱 하셔서 해룡출신인 줄 알았등마, 역시나 그 짭조름 허니 입에 딱 달라붙고 뻘소리 하는 맛이, 아니 풍(風)이 뻘밭에 뻘소리 별교産이었다. 벌교의 주먹, 담살이 의병장 안규홍 선생을 자랑스러워하는 소방관이다. 왜 벌교의 의로운 주먹은 깡패의 주먹으로 변질과 왜곡돼 버렸을까
이 선배야 말로 순고의 상징과 영혼, 해태상의 정신을 제대로 살린 직업을 선택한게 아닌가. 제대로는 참이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순고인이 아닐 수 없다.
법과 정의와 사회 안전망이 무너진 사회다. 10월의 마지막 밤이 이제는 애처롭고 짠하게 들린다. 불안한 사회에 소방관이나 119 구조대원 순고인이야 말로 순고인다운 순고인이다.
오롯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봉사하는 숭고한 순고인일 것이다. 순고의 교훈, 심오한 사고, 정확한 판단, 과감한 실천은 119 안전대원에게는 생명과 같은 핵심가치다. 과감한 실천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낸다. 자랑질하지 않는 자랑스러운 순고인이다.
그날의 순고정문 해태상은 알고 보니 사자상이었다.
사자상이란걸 잘 알고 있는 고교은사도 해태상이 아니라 사자상이란다. 어떤놈이 호랑이를 세우지 남도하고 아무연관도 없는 사자를 세웠다, 그렇게 화(火)를 내뿝는다. 영국 BBC가 20세기 최고 철학자로 선정한 니체, 고정관념을 깨라는 망치로 공산주의 시조라고 오인받았던 니체, 그 니체의 인생철학을 알고 고정관념을 깨고 사자처럼 용맹한 눈을 가져 자유를 찾으라고 사자상이었나~그렇게 위안도 해보았다.
밀림의 왕처럼 오늘도 세계를 주름잡으라, 동물의 세계 밀림을 주름잡는 밀림의 왕(王) 사자상이었다. 그러고 또 보니 밀림에도 불(火)이 많이 난다. 그래도 나에게는 해태상, 호랭이상이다. 그날 내가 본 것은 분명 정의의 상징 해태였다. 호랑이도 아닌 호랭이였다. 가진 건 고만고만 하지만 불(의)에 맞서 용감하게 싸우는 강인한 전설의 해태타이거즈였다. 해태정신이었다.
올해는 사자와 호랑이가 한국시리즈에 오른 한 해였다. 타이거즈도 우승했다.
사자도 열심히 싸웠다.
호영선배도 승진을 했다.
오늘에 순천고 교정에는 순진무구한 한 아이가 서있다.
(*호)랭이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