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순신 임종을 지킨 이들
노량에서 이순신이 전사했다.
이순신 시신을 거두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이가 있다.
나의 직계 조상, 이봉수다.
보성 사람 이봉수와 고흥 사람 송희립이 이순신을 부여잡고 비통해한다.
노량(露梁)의 이슬(露)은 눈물이었다.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조광조의 기묘한(?) 기묘사화 후 남도에 뿌리내린 경주 이씨 애일당공파, 나의 13대 위 조상 이봉수 할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KBS 사극 <징비록>을 보았다.
2015년에 방영된 사극 드라마다.
유성룡의 <징비록> 사실기록을 바탕으로 한 다큐드라마다.

녹도(녹동) 만호 정운이 전사한 부산포 해전을 승리하고 다섯 번 해전을 더 치르고 이순신은 여수 전라좌수군 본영에서 제장 회의를 하고 있다.

이순신이 순천부사 권준에게 화약상황에 대해 물으니 권준이 이렇게 답한다.
"다섯 번에 출정으로 화약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지방 관아와 의병장들이 수시로 화약을 요청해 가져간지라 예비로 비축해 놓은 화약조차 없습니다"
이순신이 한숨을 쉬며 송희립에게 화약을 보충할 길이 없는지 물으니, 송희립이 이렇게 답한다.
"조정에서 내려 오기는 너무 먼 길이고 감영 쪽도 알아봤지만 화약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왜군은 군량미를 확보하려 전라도로 가는 진주성을 치려고 왜군들이 김해로 모여들고 있을 때였다. 이순신의 마음을 즈레짐작해본다.
이순신이 한숨을 푹~쉬며 일어선다.
송희립에게 다짜고짜 따라오라고 말한다.

♤ 이봉수는 누구인가?
그리고 50회작 <징비록> 드라마 27회에 처음 등장하는 이가 화면에 비춘다.
훈련원 주부, 이봉수다.


수군이 오줌을 누고 간 오줌바닥 흙을 혀에 대고 입맛을 다시고 있다.
그리고 흙을 소쿠리에 담는다
화약을 제조할 때 가장 구하기 어려운 염초(질산칼륨)를 구하기 위해서다. 염초는 오늘날 화약비료와 유사하다. 장군 중에 장군은 똥장군이라는 말도 있다. 염초를 만들려면 사람의 오줌과 똥, 분뇨에서 나오는 암모니아 성분을 채취하여 가마솥에 끊인다.


이봉수가 이순신, 권준, 송희립 앞에서 화약제조 시범을 보이고 있다.

이순신이 '드디어 해냈구먼' 하며 흡족해한다. 송희립이 '어찌 제조한 것인가' 하고 놀라며 물어본다.
이봉수가 답한다.
"처마 밑이나 뒷간 근처에 있는 맵고 짠 흙 속에 염초성분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 그것을 가열해서 식혔더니 염초성분이 나왔는데 몇 번이고 끊이고 말렸더니 화약에 쓸 수 있는 염초를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로 제장들 회의에 이봉수가 매번 나온다. 파란색 군관군복을 입고 순천부사 권준 옆에 앉아 있다. 탁자 중앙에 이순신을 기준으로 왼쪽 두 번째 앉아 있다.

고미숙 저서 <이순신을 만든 사람들> 이순신을 도운 숨은 인재들 7인 중에 2명이 나온다. 화약을 만든 보성生 이봉수와 조총을 만든 순천生 정사준이 매번 회의 때마다 드라마에 나온다.

군사를 모집하고 훈련시키는 훈련원에서 이봉수는 이순신 곁에서 장군을 보필한다.

칠천량해전에 출정하라는 선조의 令을 거역한 선조는 이순신을 파직한다. 한양으로 압송하려 의금부 군관들을 보낸다.
이봉수가 이순신 경호처장이나 된 듯 의금부 군졸들을 막아서고 따지고 있다.

이봉수가 제장들 회의에서 끌려 나가고 있다.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부임했다. 이봉수가 무모한 전투라고 원균에게 이렇게 간언한다.
"아무리 우리 화력이 강하다 하나 적의 배 600척과 맞서는 것은 무리입니다"
원균이 저놈을 끌어내 당장 장을 치라고 한다. 원균이 화약 만드는 놈이 화약이나 잘 만들 것이지 출정하니 마니 전략회의에 끼어든다고 버럭 화를 낸다.
끌어내 장을 치라고 말한다.
옆에 군관이 화들짝 놀라며 원균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주부(이봉수)는 우리 수군의 화약을 책임지는 장교입니다"
"이주부가 누우면 큰일입니다"
조선수군에게 화약이 얼마나 중요했으며, 화포장(匠)에 화포 장(長) 이봉수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 수 있는 대사다.
♤ 이순신 명량으로 가는 길?

이순신은 걷기에 달인이다.
이순신이 고문을 당한 곳이 광화문 이순신 동상이 서있는 바로 옆 現 세종문화회관이 있는 형조관아다. (고문으로) 온몸이 쑤시는 데는 걷기만 한 것이 없다.
이순신은 총 640 여 km를 걸었고, 오늘에 <조선 수군재건길>로 거듭나고 있는 진주에서 명량까지 105 km를 걸었다.
오늘에 어른들은 북한산 둘레길을 걷는다.
아이들은 체험학습으로 남도의 이순신길을 걷는다.

권준이 부사로 있는 순천(부)에서는 병기를 수집하고, 이봉수의 고향 보성 조성면 고내마을 조양창(군량창고)에서는 군량미를 얻고, 경주 이씨 집성촌이 있는 장흥 회진면 진목리인근에 회령포에서 배설이 숨긴 배를 다시 찾아 수군을 재건했다.
장흥 회진면 진목리는 현대문학의 거목 경주 이씨 이청준 작가의 고향이기도 하다.
득량만? 보성과 고흥의 낀 바다이름 득량(得糧), 득량만과 보성 득량면의 이름은 식량을 구한다는 이순신 역사에서 유래한다.
그러고 보니, 경주 이씨 이봉수와 기묘사화때 남도로 내려온 조상 이극평과 이욱이 있던 선영, 고흥 경주 이씨 애일당 공파 문중에서 선영에 시제를 모시러 갔던 보성 은곡리 사초마을, 그 곳이 조성역을 사이에 두고 조양창(고내마을)과 가깝다.

은퇴를 전후로 '수군재건길은 인생재건길~' 하며 걸어도 좋겠다.
나이를 생각해 다 걸을 수는 없고, 저마다 의미 있는 길을 걸어도 좋겠다.

나는 조상의 흔적이 묻어나는 보성에서 장흥까지 수군재건길 5코스를 걸어보고 싶다.
회령포 가는 그 길에는 <이청준문학길>도 있다.

그날에 이순신은 왜군들이 전라도, 서해를 장악하려는 풍전등화에서 명량으로 가는 길이었다.

수군 재건길을 걷고 인생후반전을 낫낫하고 명량(?)하게 살아야겠다.
<남도와 사랑에 빠지는 인문학 기행>은 명량으로 가는 길이다.
♤ 이순신 측근 이봉수
그날에 이봉수 화포장도 명량했다.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 후 제일 먼저 이봉수를 부른다.
이순신이 이봉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배는 시일이 걸릴 것이니 가장 급한 것이 화약과 총통이네"
"밤낮을 가리지 말고 생산해야 할 걸세"
이봉수가 환한 미소를 짓고 이순신에게 이렇게 답한다.

"예~대감, 이 몸이 부서지도록 만들어 보겠습니다요"
꼼꼼한 이순신은 무기 제작현장을 방문한다.

이순신이 오자 이봉수가 뛰쳐나와 이렇게 답한다.
총통이 200문, 화약은 5천 근 정도가 마련되었구요
화약의 이봉수와 함께 총통 담당 정사준이 이렇게 명량하게 답한다.
"ㅎ ㅎ 이놈들 잠 좀 자고 하라 해도 통제사 대감이 오셔서 그런지 이놈들 밤새 쇠만 두들기고 있습니다요 ㅎ ㅎ "
이순신이 답한다.
고맙네~고맙네~
<난중일기>에도 이순신의 이봉수에 대한 신임과 고마움의 표현이 몇 번 나온다.
이봉수가 힘쓴 일임을 알 수 있었다



전두환의 신임을 얻은 (고흥 도양읍과 도덕면 경계) 상유마을에 자란 장세동처럼 이순신 장군은 누구보다 이봉수를 곁에 두고 신임한 듯 보인다.
전두환이 세동아~그렇게 불렀듯 이순신은 봉수야~그렇게 불렀을까?
이순신은 1545년生 이고 이봉수는 1573년생이니 봉수야~그렇게 부를 만도 한다.
봉수야~봉수대 만들어라~봉수대~봉수야~
그렇게 부를 만도 하다.
그렇게 신임하는 측근 이봉수를 조선의 운명을 건 싸움, 1597년 정유재란 <명량해전>을 앞두고 제장들 회의를 한다.
이번에는 원균이 화약이나 만드는 놈이 전략회의에 끼어든다고 끌어내 장을 쳤던 이봉수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부딪히며 이렇게 맹랑하게 답한다.
주먹을 불끈 쥐고 이순신에게 쥐새끼(?)라고 말한다.

그렇지요
조금씩 빠져나오는 쥐새끼, 쥐새끼 같은 적들을 총통으로 박살 내버리믄 되것습니다요
드라마에서는 명량해전 전투 장면은 재현되지 않았다.
김한민 감독 영화 <명량>을 본다.
흔히들 알고 있듯 명량해전의 승리 원인은 울돌목에 설치했다고 잘 못 알려진 철쇄가 아니다.
화약이었다.
명량해전은 조선수군과 왜군이 좁은 해역 울돌목에서 싸운 근접싸움이었다.
화약 중에 새알처럼 조그마한 조란탄(鳥卵彈), 기관총처럼 한번에 수많은 탄알이 나오고 조총보다 사정거리가 긴 조란탄을 사용했다. 조총 사정거리 밖에서 조란탄으로 명량해전을 승리하고 조선을 구한 것이다.
12척의 배로 열배가 넘는 130여 척 배를 맞서기가 버거웠을 것이다.
화약을 5천 근이나 준비해도 포탄을 만들 철이 조선에는 부족했다.
1597년 명량해전이 끝난 후 420년이 지난 2017년도에 울돌목에서 조란탄이 발견됐다.
누란지위에서 조란탄을 쏘며 절박했던 그날의 흔적이다.


<난중일기>에 사실 기록에 의하면 이순신과 이봉수가 철이 없으면 돌에구멍을 뚫자고 했을 것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 했던가
이봉수는 여수바다에 철쇄를 설치했다. 돌에 구멍을 뚫어 철쇄 군데 군데에 매달아 철쇄가 조류에 밀려나가지 않도록 했다.
그 묘안으로 화포도 철대신 돌에 구멍을 뚫었을 것이다.

이순신이 이봉수에 건의에 화답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봉수야 너만 믿는다, 봉수야~"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천거했던 영의정 유성룡은 전쟁이 끝난 후 고향 안동으로 낙향하여, 후세에 경계할 懲자와 삼가할 비毖자를 써 <징비록(懲毖錄)>을 남겼으나, 40년 후에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역사는 반복돼 300여 년 후에 조선은 일본에 합병됐다.
그 후로 100여 년 후, 오늘에 그날에 선조와 윤씨 윤두수를 비롯한 대신들을 닮은 위정자들이 나라를 탄핵정국으로 몰아넣었다.
드라마 끝 엔딩신(Ending scene)에 유성룡이 여해 이순신을 부르며 하는 독백으로 드라마는 끝난다.

여해~먼 훗날 우리가 걸었던~ 이 고단하게 걸었던 이 길을~후손들이 다시 걷게 되면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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