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여행

나의 족보유산 답사기행 1 ; 경주이씨 애일당공파 이봉수 장군

고흥돌문어 2025. 2. 22. 13:20

♤ 명문가란?

임진왜란 그날에 판옥선 노를 젓는 흥양(고흥) 출신 격군들이 많았다.
나의 조상은 격군(格君)이거나 격군장(長)쯤 되려니~족보에 무지랭이 나는 그랬다.
검바우(검바구)가 고인돌 인 줄도 모르고 검바우에서 고구마 캐듯 족보에 뿌리를 캐봤다.

고흥분청문화박물관이 있는 사구시(두원면 운대리)의 가마터인가~나를 흥분의 도가니로 밀어 넣는 역사적 사실을 발견하고 이렇게 묻고 물어본다.

나의 조상은 화포장(長)이었다.
경주 이 씨 애일당공파 이봉수였다.
그럼, 나는 그렇게도 나를 주늑들게했던 명문가, 명문가의 후손인가?

나는 장군의 아들이었다.
남쪽바다 석계(石溪)장군의 후손 돌문어였다.

♤ 나의 역사문화박물관?

순천낙안에는 나의 아버지와 동갑生을 기리는 <순천시립 뿌리깊은 나무박물관이 있다>

1936년 쥐띠 丙子生 한창기 선생이다. 중절모를 쓰고 있는 선생의 모습에서 아버지를 떠올린 적이 있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는 박물관이 없다.

시골에서 유지라는 한분이 돌아가시면 역사문화박물관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 동갑생 어르신이 남긴 말(語)만 있을 뿐이다.
사라져 가는 박물관보물들이 그립다.
그리움과 아쉬움에 내방에 나의 역사문화박물관이나 만들어 봤다. 나의 예술에 전당이라고도 한다. 나 혼자 큰 화면 TV화면에 유튜브도 보고 책도 보고 글도 쓴다. 몰입하여 자유를 만끽하는 공간이니 전당이 따로 있겠는가

하여간, 아버지가 남겨 놓으신 족보책과 두원면지(誌), 유림향교... 등등
그리고 고향의 이야기 담론(談論)은 세계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세계인이 가장 많이 읽은 <어린 왕자>를 아버지 유산 곁에 두었다.  

아버지의 유산

책을 퇴근 후에 넘기고 넘겼다.
풍수지탄이었다.
두원면지 마지막 장을 덮으며 그날에 소리는 오늘에 울림으로 다가온다. 고인이 되신 두원의 어른들은 이렇게 적어 두셨다.

두원면지 편집을 마치고...

천박한 지식에 미욱한 재주를 탓하여 한숨짓던 것이 몇 번이며 자료의 빈곤과 불비한 고증의 어려움에 중도좌절하려 했던 것이 몇 번이었던가
<중략>
좀 더 깊이 있는 연구와 집필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러나 어쩌랴 미흡한 부분은 이제부터라도 하나하나 챙겨서 훗날 증보할 기회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후학(後學)들에게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 간절함  

간절함이었다.
올림픽 10연패로 세계에 이름을 알린 양궁선수들에게도 간절함이 있었다.
시골 촌부에게도 후손들에게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다. 시골 촌부들에게도 세계를 제패한 양궁선수들에게도 간절함이 있었다.
순천사람 대한양궁협회 장영술 부회장의 양궁 뒷이야기 강연에서 <간절함>이란 말은 나를 흥분시켰다.

고교아카데미 강연에서

<인연>의 피천득 수필가는 좋은 글은 사람을 흥분시킨다고 했다.
나를 무엇보다 흥분시키는 또 다른 것, 글(文)을 블로그에서 발견했다. 경주 이 씨 애일당(愛日黨)파 족보, 나의 뿌리에 대한 글이다.

월산할배 블로그

정승이나 판서집안의 한자 족보가 아니었다.
망팔(望八)에 월산할배가 쓴 남도에 뿌리깊은 경주 이(李 )씨 애일당파 조상이야기다.
할배가 손주보다 아이들이 나중에 크면 보라고 쓴 한글판 족보 이야기다.
고증과 사실에 기반한 재밌는 이야기이니 족보다큐사극이라 해도 무방하다.
디지털책(e-Book) <족보 속에서도 역사는 흐른다>였다.

♤ 역사는 흐른다

그렇다, 흐른다.
대지에 시간도 흐르고 몸의 피도 흐르고 역사도 흐른다.
나로도 우주센테가 일러주는 우주의 萬古의 진리다.
간절함과 꿈이 있으면 通하는 것일까
나는 김한민 감독 이순신 시리즈 영화를 보며 할머니 말씀이 감나무에 연 걸리듯 연신 걸렸다.

느그 조상들은 임란 때 왜놈들 하고 싸우느라 개고상 했단다

할머니도 내가 태어나기 전에 하내의 하내들에게 들은 옛날이야기다.
학창시절 순천 자취방에서 들려주었다.
조상들이 글(文)로 남기지 못했지만 말이 흐르고 흘러 할머니한테 까지 '개고상~'으로 전해졌구나~그렇게만 나는 흘겨 들었다.
이름 없는 개똥이들이 나라 지키려 고생했다~
구전(口傳)되고 구전 돼~개똥이 고상했다~개고상 했다,
그렇게만 지레짐작 만했었다.

그리고 그 말이 영화감독 귀에도 들어가  <명량>에 격군들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며 어두운 판옥선 바닥에서 하는 이런 대화가 나온다.

나중에 후손 아그들이 우리가 이~개고상하고 나라 지킨거 알랑가 몰것네~
영화 <명량>에서

내가 감독이면 이런 대사를 더 넣을 것 같다.

우리는 못배와서 글을 모른다지만,
후손들은 배와서 글을 아니 알아주것제
이번 참에는 장군께 일기로 우리 개고상한것 좀 써달라 부탁 좀 허세~
일기로 말이시...잉

그렇다.
갯사람과 장인(匠人)이 많은 반도 끝에서는, 글을 잘 쓰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글을 알고 모르고의 문제였다.  
글(文)을 아는 학자 한 사람의 기록보다 글을 모르는 여러 사람들의 구전을 나는 이제는 믿기로 했다.
글(文)은 몰라도 냉가슴이어도 말은 할 수 있고 여러 사람 이야기 구전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울돌목에 똥장군  

피는 通하는 것일까?
시리즈 영화 첫 작품 <명랑>에 진구(할배)와 벙어리(이정현 배우  粉)에게 자꾸 끌렸다.
영화에서 진구는 조선수군을 구하려고 똥장군(소매통)에 포탄을 싣고 적진으로 간다.

이순신 영화는 포탄상자도 아니고 왜 화약포탄을 실은 똥장군을 등장시켰을까?
똥장군은 소매통 지고 논밭에 거름 주러 가는 아버지인가?
두원면지에 실린 조상의 <보은통>인가,
<사라져 가는 전라도 말의 뿌리> 책에 실린 장흥에 소매장군~오줌장군~광양 말이라는 푹수마리인가?

하얀 소복에 말 못 하고 치마처고리를 흔드는 각시 이정현은 글(文)을 몰라 벙어리처럼 살았던 할머니, 어머니였나?
그렇게 연신 물음표(?)를 던져봤다.
그리고 영화에 진구할배의 말도 떠오른다.

이 배는 결단코 장군께 가서는 안되네~
그거네~바로 그거네~
잘혔네, 자네(임자) 까정 이리보고 나만 편히가네~
(화약폭발!)

그 의문이 풀렸다.
진구할배는 장흥에 고흥에 진목마을 살았던 진목에 진구할배들, 이순신 장군이 회오리바람을 극복해줬다고 말한 天幸, 천행은 백성이었다.
진구할배는 眞道의 진구요, 장흥에 고흥에 남도에~참나무 眞木에~ 참사람 옛사람~진구(眞舊)였다.

국립민속박물관장이 보증하는 말, 장군 중에 장군은 똥장군' 이라는 말에 유례도 여행으로 느껴봐야겠다.


♤ 월산할배

그거네~바로 그거네~에 그라제~를 더(+)할 사람을 만났다.
고흥 두원 풍류리 月下 원동에 월산이 있고 진목마을에는 경주 이 씨의 임자, 원동떡과 월산떡이 살았다.
남파랑 72번길 출발점이자 고흥만리조트가 있는 풍류리에는 학무도(鶴舞島)가 있다.  진구할배 임자(이정현 粉)이 취마를 휘두르며 추는 학춤(鶴舞)을 연상케 한다.

학무도, 풍류리 원동

천경자 화가가 태어난 고흥 서문리, 서문리 경주 이 씨 문중에는 월산아이가 태어났다.  
간절함이 通하여 나에게 인연으로 오늘에 다가왔다.
애일당공파 할아버지 항렬 상(相) 자 돌림에 이상완, 월산할배다.
퇴직 후에 사재를 털어 족보의 뿌리를 고증한 분이시다.
처음에는 할아버지가 손주는 안 보시고 블로그 글만 쓰나~이상한 눈으로 봤던, 나에게는 이상완 王삼촌~월산할배다.  
月山은 고흥읍과 두원면 사이를 휘감고 있는 주월산(舟越山)에서 따온 월산이다.  
배가 산으로 갈 설화쯤 되는, 배가 산을 넘었다는 주월산으로 알고 있는 나는 무지랭이었다.

♤ 배가 산으로 간 山?

<고장의 뿌리> 향토서적에는 먼 옛날 고흥에 홍수가 나 배(舟)가 산을 넘어(越) 주월산이라고 적혀있다.
越山할배가 아니란다.
이순신 장군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지금은 육지나 예전에 바다였던 곳이 많다.
고흥 호산리와 두원 용반리가 바로 바다나 포구였다.
배가 산을 넘을 만큼~배가 산으로 갈 만큼 누란의 위기에서 간절했던 이순신 장군과 수하장수들 역사의 흔적이 주월산에 있다는 것이다.
무지랭이 후손들이 그것을 모르거나 딴 이야기로 왜곡하거나 대충 얼버무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관심이다.

그러고 보니 두원면과 인접한 과역면 친구의 말도 또렷이 떠오른다.

나가 어려서 비료 보대기(푸대)로 풀썰매 오지게 타던 그 많던 묘지(매뚱~)들이,
금메말시~알고 보니 이순신 수하장수들 매뚱이랑 수군들 매뚱이라지 않겄는가...

그렇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가 유명하다.
하지만, 유홍준이 보는 시각의 유홍준의 답사기다.
나의 뿌리를 찾는 나의 족보유산 답사기 여행을 떠나야겠다.

♤ 아재와 아버지

문학에 고장 장흥사람들이 질로 친다는 장흥 참나무골 진목(眞木)마을 경주 이 씨 이청준 거목 생가도 들러봐야겠다.
나는 고흥 진목마을에 탯줄을 묻었고, 이청준 종친 아재는 장흥진목이 생가이다.

이청준과 장흥진목마을

그날에 경주 이 씨 애일당공파 이춘곤 할배가 장흥에서 득량만 넘어 고흥으로 입향(入鄕)하였듯~
후손 이청준은 득량만 넘어 소록도와 오마도 이야기 <당신들의 천국을 썼다>  
청준이 아재도 나의 아버지도 서울 삼성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청준이 아재도 아버지도 상여차~장례차를 타고 귀향했다.
청준이 아재도 아버지도 부모 산소 밑에 잠들어 계신다.

서울 2005년 여름, 그날에 아버지와 나는 삼성병원 로비에서 한 TV드라마를 신청했다.
KBS사극 <불멸의 이순신>이었다.
아버지는 아픈 몸에도 사극을 말똥말똥~처다 보셨다.
그날은 녹도(녹동)만호 정군이 부산포해전에서 아군을 살리려고 포탄을 껴안고 죽는 날이었다.

송희립이 외치는 이소리에 좋아도 하셨다.

방포하라~방포하라

후회하고 후에 알고 보니, 송희립 장군은 고흥 동강사람이었다.
그와 형제 송대립은 두원 구룡마을에서 태어났다.
또 후회하고 가보니, 별이 떨어진 진목마을 인근에  두원운석 낙하지점에는 여산 송 씨 무덤이 있었다.

두원별(운석)이 떨어진곳

그리고 내가 아버지 꽃이라 불리는 목백일홍이 피어 있었다.
장흥에 진목 마을에도 청출어람~청준이 아재꽃 목백일홍이 피었다.
우리회사에도 목백일홍을 심었다.
목백일홍은 인고극복(忍苦克復)의 상징이다.

장흥(장~)과 고흥(공~)에는 야생화도 많다.
그래서 이청준을 문학인들은 현대문학의 거목 두 사람, 순천사람 김승옥을 감수성에 온실 속의 화초라면 이청준을 야생화라 부르는가
명 씨와 함께 경주 이 씨들이 많이 사는 나로도에는 야생화농장도 있다. 순천에서 활동했던 두원 동촌生 송연근 작가 희곡모음집 야생초 <野生草>도 있다

♤ 족보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는 나 아니어도 연구할 사람 많다. 나의 족보에 흐르는 역사란 무엇이었나?
봄날에 꽃 보고 뿌리 찾는 여행을 떠나야겠다. 흩어진 사실(Fact)과 흔적의 조각 퍼즐을 맞추면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이 나온다.
역사해석의 주제 우연과 필연,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 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E.H 카 <역사란 무엇인가>에 사관(史觀)을 나의 족보답사 여행에 적용해 봐야겠다.
퍼즐을 맞추는 것은 보물상자의 열쇠(쇗때) 비밀번호를 아는 것이요, 우리집 모두가 아는  비밀번호를 가진 '아부지은행' <케비넷역사>의 門을 활짝~여는 환희다.

미국대학 강의실에서 한 교수가 이렇게 말한다.

이순신이 영국에 넬슨보다 몇갑절 장군 중에 장군인데 <한국인 특유의 겸손함>을 역사사관에도 적용해, 외국에서는 이순신을 자세히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미국 콜롬비아大 역사강의실

그렇게 말한 세계적 역사학자 미국 콜롬비아대 리처드 블리엣 교수 말도 떠오른다. 경주 이 씨에 (리)씨가 (철들)어 알게 된 리처드교수라고 삼행시적으로 외면 까먹지도 않겠다.
이순신도 몰랐는데 이순신 수하장수들을 외국인들이 알~턱이 있겠나

족보는 역사(史)요, 문학(文)이요, 철학(哲)이다.
문ㆍ사ㆍ철 인문학이다.
무지랭이 겸손함에 바보상자 TV에 갇혀 있는데도 나는 조상도 몰라봤다.
그날에 휠체어를 뒤에서 새벽에 삼성병원 로비에서 병실로 밀어주고 가는 아버지가 하신 말씀 '미안하다 와~'는 오늘에는 조상들에게 하는 말씀으로 들린다. 조상들에게 아짐찬할 일이다.

아짐찬한 마음으로, 주말 아침에 월산할배가 보내준 이봉수 장군을 파조(派朝)로 하는  문중 가계도를 캐본다. 고구마 먹고 고구마 뿌리 캐듯 캐본다.

족보를 파는 것은 나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다.
나(我) 이재혁은 경주이 씨다.
같은 경주이 씨 중에서도 갈라진 파(派)의 시조를 파조(派祖)라 한다.

나는 평리성암공파 이인정 41대 손(孫)이다. 파조는 이인정이다. 성암 이인정은 고려말 '문하평리' 라는 종2품 관직이었다. 그의 관직 문하(평리)와 호 (성암)을 합하여 (평리성암)공파라 부른다. 줄여서 평리공파라고도 부른다.

나는 애일당(愛日堂)공파 21대 손이다. 평리성암공파에서 갈라진 애일당공파 파조는 애일당 이천석이다. 애일당은 호(號)이다. 이천석은 조선 세종 때 왕명을 출납하는 승정원의 정3품 좌승지(現 청와대 대변인)를 지낸 인물이다.

나는 이봉수 장군의 13대 손이다.
최종관직은 종2품 충청병마사다. 오늘에 도지사나 사단장이다. 임진왜란이 430 여년전 일이고 100년에 3세대가 사니 3(세대) × 4(백년)= 12~13으로 얼추 맞아 떨어진다. 개인적으로 경주 이씨 석계공파나 이봉수 파조라 칭하고 싶은 석계(石溪) 이봉수 장군에 대한 족보를 파본다.

시간여행하는 둘리처럼 이리보고~저리보고~여기저기서 캐본다.
석계(石溪)?
나의 블로그 닉네임도 바위 물틈에서 나온 돌문어, 고흥돌文語인데....
그리고 그날의 아버지의 눈처럼 내눈을 말똥말똥 쳐다보게 만드는 이것!

♤ 이순신이 선택한 탁월한 인재들

♤ 조선장 나대용과 부산포 해전을 걱정하고 있는  그 화포장은 누구?

영화 <한산>


♤ 이봉수 화포장은 누구인가?


♤ 화포염초에 들어가는 참나무숮과 眞木 의 족보역사의 관계는 ?


♤ 보은통이란?

<두원면지>



<다음글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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