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여행/고흥여행

우주로 가는 나로도 여행 ; 나로도 & 쑥섬

고흥돌문어 2024. 7. 24. 19:55

핑계(?)없는 인생은 없다.
여행작가들 글을 읽어보면 '나도 가고싶네~나라도(?) 그곳에 가보고 싶네~'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글이 좋은 글이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그곳에 가보고 싶은 이유의미를 주는 글이 참 좋은 기행문이다. 여행작가들은 그 이유와 의미를 여행의 핑계라고도 한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듯 핑계 없는 여행 없다. 삶은 여행이다. 고로, 핑계 없는 인생은 없다. 입장 바꿔 생각해봐~ 🎵 김건모 <핑계> 가 스무살 때 다르고 지금 들으니 다르게 다가오는 이유 이기도 하다.  

고흥우주발사전망대

사진 오른쪽에 붉은 화살표가 보인다. 나로도 우주센터를 볼수 있는 저 우주발사전망대처럼, 바닥이 초밥그릇 레일처럼 돌고돈다. 바닥이 돌고도니 아기공룡 둘리처럼 이리보고 저리보고~ 🎵 하면 영남면 (龍)바위도 보이는 둘리(?) 조망대 처럼 어디에서, 언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같은 것도 달리보인다. 사람들은 그것을 시각, 관점, 가치관, 세계관, 우주관이라고도 한다.

우리집에는 딸아이 지도와 아빠지도가 있다.
딸아이가 벽에 붙혀놓은 대한민국 지도에서 남도를 본다. 고흥에 딸랑이(?)지도에는 딸랑~나로도우주센터 만 있다.

고흥, 딸랑이 지도

딸아이 이름이 보름달 처럼 밝게 살라는 외자 '랑(朗)' 이니 딸랑이다. 딸랑이 지도에 광양에는 딸랑 제철소만 있고, 여수에는 딸랑 진남관만 있다. 사랑을 알 나이 대학생에게 물어보면 여수하면 밤바다 라말한다.

남도, 딸랑이 지도

내방에는 내가 보는 아빠지도가 있다. 지도는 바깥세상을 보는 시선이요 관점이다.

고흥, 아빠지도

고흥관광안내소에서 받은 고흥여행지도이다. 고흥반도가 내 블러그 닉네임 고흥돌문어 처럼 생겼다. 딸랑이 지도와 다르게 거리거리 마다 볼거리, 먹거리가 풍성한 (高)품격ㆍ미(興味)거리가 있다. 나로도우주센터장(長)은 하늘 높게(高) 흥(興)하는 곳에 우주센터가 있으니 좋다고한다. 나로도는 고흥에 고흥이다. 하늘높이 우주의 고장 고흥을 대표하는 나로도가 있어 고흥의 고흥이요, 고흥처럼 외길이라 고흥의 고흥이다.
고흥은 육지로 가는 길목이 북쪽 동강면과 벌교쪽 밖에 없다. 나로도는 고흥읍으로 가는 길이 외나로도 봉래면를 지나 내나로도 동일면을 지나 나로대교 외길 밖에 없다. 박목월 시 <나그네> 에 나오는 길은 외줄기 남도삼백리다. 한하운 시 가도가도 끝이 없는 <전라도 길>이다.

나로도, 아빠지도

1) 나로도는 나라의 섬, 국도(國島)였다.
어려서 고향 어른들이 나로도를 나라도~나라도~그렇게 불렀다. 내가~를 나가~라 하고 나도 그렇게~를 나라도 그렇게 하겠다, 라고 동네 어른들이 말하니 이 나라도와 저나라도가 헛갈려 거시기 한 때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말목장이 있어 나라의 섬, 국도(國島)라 불렀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자면 나라도에 기아자동차 공장이 들어선 셈이다. 그보다 더 큰 조선의 현대자동차 말목장은 한하운 시인이 가도가도 끝이 없다는 소록도가는길, 고흥 서남쪽 <도양곶>에 있었다. 고흥 우도(牛島)에서는 왕(王)의 활을 만드는 조선제일의 대나무(신우대) 생산지가 있었고, 두원면 운대리에는 양반귀족들이 쓰는 분청사기(그릇)을 만드는 곳이 있었으니, 고흥(흥양)은 가히 조선의 국가산업단지라 할만하다.

고흥분청문화박물관

고흥은 또 임진왜란 때 전라좌수영 5관(官)5포(浦)
중에 1관 4포가 있었던 전략적 군사요충지였다. 어제는 농사꾼에 장인이요~오늘은 수군이요~나는 똥장군~이순신은 대장군~이순신장군이 참 고마워 했던 약무호남(若無湖南) 시무조선(是無朝鮮) 사람들이다. 조선의 큰 공을 세운 네델란드 사람 박연이 거문도로 오지 않았으면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까? 그힘으로 울릉도 까지 배를 저어 독섬, 독도를 이름지은 사람들이다.

나로도 이야기에 갑자기 독도가 튀어나오니 고흥배가 울릉도 성인봉 산으로 가려한다. 산으로 간김에 한마디 더하면, 그렇게 일찍이 실학ㆍ실용과 개척정신이 뿌리에 깉든 남도에, 개화기 때 현감을 3년동안 지낸사람이 살았다. 갑신정변의 주역 김홍집이요, 그 김홍집을 나는 학창시절에 연빙하고 1884년 갑신정변이라고 만 달달 외었다.
김홍집이 떠날 때 고흥사람들은 선정비를 12개 면에 세워주었고, 그 김홍집은 서울에가서 고종에게 암살 당하고 지나가는 한양 선비양반들 돌에 맞아 두번 죽임을 당했다. 고흥사람들 시각으로는 선한 정치인이였는데 왜 한양 양반 대신들 시각에서는 역적이였을까?

그 후로 대한제국은 일본이 합병하였고, 그 을사오적을 죽여야 한다고 암살단을 만든 사람이 있었으니 대종교 창시자 보성벌교사람 <나철>이였다. 지금으로 치자면 국세청장을 그만두고 을사오적을 죽이려 애쓴이가 나철이다.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도 민속신앙을 믿었고 독립군 대부분은 단군신앙에 뿌리를 둔 대종교를 믿었다. 지금에는 그 대종교를 이단이라 한다. 이 얼마나 염빙~할 역사인가

글이 또 옆길 삼천포로 빠지려한다. 삼천포는 경남에 있어 삼천포로 빠질 수가 없다. 전라도길 나로도 길은 외줄기라 다시 나로도 길로간다. 하여간 나로도 이야기다.
비단 ()를 써  비단처럼 오래(老)된 아름다운 경치라하여  '나로도(羅老島)' 라고 불렀다 한다.
전라도(全羅道)의 나(羅)와 같은 한자를 쓰니 전라도의 섬인가? 젊은이들이 떠나고 이제는 노인(老人)들이 많이 사니 노인의 섬 나로도인가? 아니면 모든 것은 '나로' 부터 비롯된다는 우주관을 품은 섬이라 나로도인가? 그렇게 나로도 나라도 나로도 하며 딸랑이 지도에 고흥에 딸랑 나오는 나로도에 갔다.

2) 왜 나로도에 우주센터가 생겼는가?
2001년도에 나로도가 왜 우주센터 부지로 선정됐는지 궁금하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 했던가, 인간들은 말한다. 원래 경상남도 남해나 거제로 가려했던 우주센터 부지가 김대중 대통령 시절 고흥 국회의원 박상천 법무장관이 힘을 써 고흥에 부지가 생겼다, 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사람들은 이런 정치적ㆍ역사적 해석을 참 좋아한다. 허기사 술안주감 으로 좋으니 나도 직접 보고 들은 것도 아니니 그럴싸할 뿐이다. 나도 궁금해서 나로도에 우주센터 부지가 왜 생겼는지 찾아 보았다.

정부에서는 부지 11곳을 찾아 후보지로 선정했다. 그중에 서해나 동해지역은 다른나라 영공을 지날 우려가 있어 제외했다. 최종후보지로 남해와 고흥이 선정됐다. 당시 남해가 지역구인 박희태 의원과 고흥이 지역구인 박상천 의원이 1938년生 서울대 법대 동기동창이다. 고흥과 남해 기후가 비슷하고 경상도 남해를 거꾸로하면 전라도 해남이 되는 그런정치였다. 그시절에는 원내에서는 서로 싸우고 원외에서는 밤에 어이~자네~하면서 서로 술한잔 하는 것을 국회앞 서여의도에 직장이 있었던 나는 목격했을 뿐이다.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듣지 못했다.
부지선정을 과학적 으로 분석해 놓은 보도에 따르면, 남해와 고흥 2곳 중에 고흥이 선정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발사 운용각도가  15도로 최적 2) 국공유지가 70%로 부지매입 용이 3) 부지 주변 인구수 적어 사고 발생시 안전위험 적음  

3) 희망시와 망향시 ; 아~하반이여~!
나로도 우주발사체가 있는 옛 하반마을에는 갈 수없다. 출입통제구역이다. 여행객들이 사진을 찍은 장소는 우주센터 들머리에 있는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 옆에 있는 나로호 모형물이다.

나의 역사 문화답사기 여행도 좋지만 여행의 묘미는 우연의 발견이다. 우주센터 들머리에는 우주강국으로서 꿈을 노래한 '희망시' 와 하반마을 고향을 잃은 '망향시' 가 하나의 비석에 앞뒤로 쓰여있다. 삶도 망향과 희망이다.

물을 떠 밭치는 쟁반 하반(河盤)이 왜 하반이더냐? 물만 있으면 그림의 떡이요, 물을 먹을 수 있는 컵과 쟁반이 있어야 사람이 살지 않던가. 세상에는 상반(上半)이 양(陽)이라면 하반(下半)은 음(陰)이요, 인생사 양이 있으면 음이있다, 그늘(陰)이 있어야 시원하다. 그렇게 나에게 주는 '의미' 자연의 섭리를 인생사에 비유하며 나에게 주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면 그건 관광보다 좋은 여행이요, 그 여행이 모이면 삶은 여행이 된다.

4) 여름 금강산 봉래산 ; 정철 관동별곡?
나의지도ㆍ아빠지도에는 나로도에 봉래산 편백숲이 나온다.

봉래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학창시절 정철의 <관동별곡>에 다음중 금강산 이름이 계절별로 맞는 것은  하면서 외었던 여름 금강산 별칭이 봉래산이다. 한국에 지명 중에는 중국에서 유래하는 지명들이 많다. 봉래산은 부산에도 있고 강원도 영월에도 있다. 중국 진시황의 신하 서복이 불로초를 구하러 동쪽으로 왔다. 여기가 중국의 삼신산(三神山)중에 하나인 봉래산 처럼 아름답다 하여 봉래산이라 했다하는데...서복이 그랬는지 내가 사복이 그렇게 보았고 말하는 것을 직접 듣지 못해 그냥 그랑가브다 했다.

다만, 교학사 역사책을 태ㆍ정ㆍ태ㆍ세ㆍ문ㆍ단ㆍ세 하며 달달달 외게 만들고 대학 에 가면 비로소 E.H. 카Carr《역사란 무엇인가?》를 가르친다. 그저 앞뒤가 안맞고 이상할 따름이였다. 이책에서 말하는 '역사는 역사를 기술한 저자의 관점, 사관(史觀)' 이라는 말이 눈에 쏙 들어왔다. 아~고등학교 역사책은 교학사의 관점이였구나, 나의 고향 사람들이 보는 관점, 나의 관점이 중요하겠구나, 역사가 과거와 미래의 대화라 하니 역사부터 나의 관점으로 보아야 나의 미래를 바로 볼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도 해본다.

주범인지 종범인지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조선 선조 기축사화 때 정여립과 연루되었다고 호남선비들 천여명이나 죽인 선조를 《관동별곡》에서 '님' 이라 칭한 정철이 아니였던가. 님이 18이다.
정철이 누구인가? 선조때 우의정을 지낸 인물이 아닌가, 뿌리없는 남도의 조상들이 그 어두운 밤바다에서 노젓고 활쏘을 때 정철은 무엇을 했는가. 그런 정철의 관동별곡을 달달 외면 대학가고 못외면 못가는 그런 교육이였구나...그렇게 이순신과 조선수군과 격군조상들을 생각하며 봉래산 정상에서 비단처럼 드넓게 펼처진 다도해 풍광을 즐겼다.

다도해 풍경, 봉래산 정상에서

그날에 명량해전을 치르고 고흥과 여수 앞바다를 지나는 조선수군의 웅장함이 느껴졌다. 지금은 통통배 낚시꾼들의 천국이라한다.
참신기하다. 봉래산 정상에서 보니 거북선 맹키로 생긴 바다에서 돌출한 작은 돌섬 곡두여(위 사진 화살표)가 보인다. 자연이 만들어 낸 이런 풍광을 국어사전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경이롭다!

5) 소나무 나로호? 봉래산 용송(龍松)
봉래산 경치는 네이버나 유튜브에게 물어보면 된다. 봉래산 하산길에 우연히 하늘로 승천한 소나무 이야기를 발견했다. 고흥사람들은 참 이삐게도~이쁘게도 적어 놓았다. 승천하지 못한 용이 소나무로 변신 하였다가 이곳에 고흥사람들 염원인 우주센터가 들어서니 용으로 다시 변신해 하늘로 승천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도 용송(龍松)이다.
승천한 날이 태풍이 올때 였나보다. 그런데 하필 태풍이름이 황소도 아니고 연약해 보이는 '매미' 다. 매미에 쓰러져 용이 승천했다(?)고 한다. 봉래산~낙락장송 소나무~를 보니, 깨복쟁이 친구 단심이 난심이도 생각나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시한수~저절로 나온다.

단심가, 성삼문

6) 개가 돈을 물고 다녔다? ; 나로도항
배고품을 달래는 쌀창고만 창고이던가, 디지털시대 정보의 창고 유튜브가 있으니 참 편리한세상이다. 주말에 내방 디지털문학관에서 유튜브로 나로도 여행을 떠났다. MBC 에서 방영한 <만리포구>가 창고에 있다. 올해 제작한 햅쌀은 아니지만 시청하는 그 맛이 햅쌀맛이다. 고흥육지 포두면과 내나라도(동일면)을 이은 다리가 나로1대교요, 내나라도와 외나라도(봉래면)을 잇는 다리가 나로2대교다. <만리포구> 다큐는 나로2대교 인근 서쪽에 있는 사양도라는 섬에서 고기잡이배를 타는 부부이야기로 시작한다. 요즘은 빨간 적새우가 돈이 된다고 한다.

사양도 아래에는 쑥섬(애도)가 있고 쑥섬 오른편에 나로도여객선터미널이 있는 나로도항이 있다. 나로도 하면 저바다에서 막 튀어나온 삼치처럼 신선도 No.1  나로도 삼치다.

나로도항은 삼치를 일본으로 수출하는 항으로 유명했고 '나로도 삼치파시와 축정마을을 모르면 뱃사람이 아니다' 라는 말까지 있었다고 한다.

일제시대 나로도에 일본인이 500명 가까이 거주했고 백화점도 있었고, 해방 후 통조림 공장, 조선소, 얼음창고가 있는 부촌이였다. 구한말 한때는 나로도가 여수 돌산군 소속이였으니 '여수에서 돈자랑 하지 마라' 는 나로도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나로도 아저씨 말이 한 때는 개도 돈을 물고 다녔다고 한다. ㅎ ㅎ ㅎ

7) 고흥에 고흐가 산다? ; 노인과 바다
고흐 미술작품도 알아갈겸 <고흐와 함께 떠나는 고흥여행 ; 고흐 & 고흥> 블로그 글을 썻다. 고흐의 작품으로 연상되는 고흥에 가볼만한 곳을 소개하는 글이였다. 고흐는 친구 고갱이 자신이 살고있는 프랑스남부 야를마으로 온다는 소식에 기뻐 고흐를 위해 <해바라기 🌻> 수점을 그려 주었다. 그런 친구 고흐를 위해 고갱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초라한 노인같은 고흐의 모습을 그려주었다.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 고갱

고흐는  육지풍경 만 그린 것이 아니라 바다풍경도 그렸다.

나도로항이 있는 축정리에 매일 항구에 나와 바다풍경과 배를 그리는 한 노인이 있다.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그런 사연인가? 아니다. 딱 고흐다. 어려서부터 귀가 들리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귀를 자르고 붕대를 감은 고흐나 귀가 있어도 들리지 않은 노인이나 무엇이 다르랴. 노인은 절대 꽉막힌 산은 그리지 않는다고 한다. 탁 트인 바다만 그린다고 한다.

고흥의 고흐를 보며 그림과 미술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시쳇말로 집사람들이 남편 출근 후 보는 TV프로가 있다. KBS '아침마당' 에 자주나와 유명세를 탄 문화심리학자 김정운교수가 있다. 돌연히 잠적해 여수 금오도에 가서 몇해동안 그림을 그렸다.
왜 미술~미술~ 하는가? 보고 귀로 듣는게 다가 아니요, 바깥세상내면세계를 물감으로 섞어 자기표현을 하는 것이 미술이구나, 말과글 언어로 하는 자기표현은 한계가 있다. 남들이 눈으로만 보는 그저그런 뻔하고 똑같은 세상이 아닌 내눈과 직감으로 보는 세상을 표현하는 것이 미술이구나. 그래서 글쓰는 유명작가들이 말년에는 미술ㆍ미술하는구나~ 그런 생각도 해본다. 축정마을 저 노인이 짠하게만 보이면 그건 관광이요, 고흥의 고흐로 보이면 그건 여행이다, 는 생각도 해본다.

8) 쑥스러운 쑥섬
나로도항에서 배를타고 5분이면 금방 다다르는 곳이 쑥섬이다. 고흥 쑥섬이 요즘 여행객들에게 인기다. 딸아이 어려서 그냥 관광코스로 보행기 밀고 보행자의 길을 가던 시절 거제도 외도를 갔다. 돈 많은 사람이였나브다~입장료로 돈벌고 그 아들과 후손은 참 좋겠다~ 그저 그런생각만 들었던 생각의 외도(?)였다.

쑥섬이 왜 인기일까?
쑥섬은 뭐가 다를까? 그러고 쑥섬을 보던중 내눈에 설날에 쑥에 쑥~달라 붙는 조청처럼 짝~달라붙는 그말, 국어교사!

퇴직한 국어나 미술선생님이 남도의 문화관광해설을 하면 어떨까~그런 생각도 했었는데...
전남 민간정원 1호 쑥섬을 인기있는 섬으로 만든 사람은 국어교사를 하다 퇴직한 분이였다. 국어교사가 문화해설사라 쑥섬이 인기있는 것일까?

문화해설사들도  많지만 문학ㆍ역사ㆍ철학, 흔히 말하는 문사철(文ㆍ史 ㆍ哲) 중에 역사에 너무 편중하여 설명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많이했다. 역사는 과거요, 문학과 철학은 주로 현재와 미래일진데, 안그래도 뇌가 과거에 집착해 있는데 여행을 가서 또 과거 이야기를 들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한때가 있다. 역사는 주로 나와 다른 위인이나 영웅 이야기 이고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 문학이나 내 가치관에 이정표가 될 수 있는 철학여행이 좋은 이유이기도 하다.

국어교사였던 쑥섬지킴이와 쑥섬 아짐이 둘이 뭐라~쑥섬에서 쑥떡쑥떡 한다.
쑥섬에서 떡을 파는 아짐이 "쑥이 많아 쑥섬이 아니요, 쑥의 질이좋아 쑥섬이요" 그런다. 쑥섬지킴이 아저씨가 아짐한테 그런다. "쑥섬에 와야만 먹을 수 있는 그런 것을 만드세요" 그렇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쑥섬 아짐표 질좋은 쑥떡을 만드는 것이다. 거기에 남도産 콩고물에  버무리고 설날 조청에 찍어 먹는 그 감칠맛이다. 쑥섬에서 쑥떡 먹는 그 쑥스러운 전라도 아짐표 음식맛이다. 쑥스러운 쑥섬은 국어사전 '쑥스럽다~' 에 나오는 그저그런 표현이 아닌 쑥섬스러운 쑥스러움 이였다.

9) 봉래산도 식후경? ; 리필과 리셋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여름 금강산 봉래산도 식후경이다. 서울사는 후배가 귀뜀해준다. 준다. "파주장어집 갈릴리(농원)만 있는게 아니네요, 나로도에도 갈리리가 있네요~' 기특하게 후배가 알려준다. 예약만 하면 그날 잡아온 신선한 병어, 참돔, 우럭, 농어, 서대... 인당 3만원에 무한리필이다. 그릇에 회감이 떨어지면 사장님이 다시 회를 무한리필해준다.
'갈리리' 는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지역으로 갈리리 호수와 예수의 유적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갈릴리는 '둥글다' 는 의미라고 한다. 갈릴리, 갈릴리 하니 '그래도 지구는 둥근데...' 그랬던 갈릴레오도 연상된다. 우주센터에 어울리는 '갈리리회집' 이름이다. 회는 역시 이렇게 막~잡아온 고기를 막~썰어야 제맛이다. 막~살아도 인생도 무한리필이 가능한가? 회는 리필(Refill)이요 인생은 리셋(Reset)이다. 리셋에는 여행 만한 것이 없다.

10) 세계관 넘어 우주관으로 ; 칼 세이건 《코스모스》
고교시절 나는 학교정문에 걸린 이 슬로건을 보며 등교했다. '오늘도 세계를 주름잡기 위하여' 그때는 그게 좋았고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에 나의 삶의 가치괸은 세계보다 세계관(觀)이다. 오늘도 세계관을 주름 잡기 위하여...오늘도 나는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른다.

나로도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세계관 넘어에 우주관이라는 것도 있구나~하는 생각도 해본다. 얼마전 나의 이런 생각의 짐을 풀어 놓으니 지인이 칼 세이건코스모스》를 읽어보라 한다.

와우~책이 퉁겁다~두껍다. 책에 놓인 돌이 고흥 두원운석을 닮았다.

고흥 두원운석 낙하지점

쑥섬에는 코스모스(우주)에서 이름을 딴 코스모스가 피어난다. 코스모스는 우주의 질서요, 그 반대가 혼돈과 원시의 상태가 카오스(Chaos)다. 내나로도에서 고흥읍 쪽으로 빠져 나가는 길에는 원시체험관 시호도가 있다.

책을 읽고 느낀점 몇가지를 적고 나로도 여행의 마침표 점을 찍는다. 우주에서 찍은 지구 크기 사진만한 마침표 방점을 찍어본다 ...

우주에서 본 지구
우주에서 본 지구는 창백한 푸른점 하나이다.
우주에서의 시각(우주관)으로 보면 인간의 교만과 탐욕 그리고 오만과 편견이 얼마나 부질 없는가.
창백한 푸른점 하나 지구는 우리가 살수 있는 유일한 고향이다.
고향을 소중히 다루고 서로를 따뜻히게 대해야 한다.

#남도여행 #고흥여행 #나로도여행 #나로도우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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