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고(No.1)라는 여행기가 있다, 열하일기다.
▪︎ 기골이 장대하고 도둑놈(?)처럼 생긴이는 누구인가?
'연암 박지원' 이다. 뇌에 '박지원' 을 입력하니 연암 보다 남도 정치인 박지원이 먼저 떠오르면 남탓이 아니라 내탓이다. 뇌 전두엽은 평소 생각하는데로 반응한다.
회사에 작은 도서관에서 도둑놈 책을 봤다. 쉬는 시간에 잠깐 보다 왜 세계최고! 인지 궁금해졌다. 어려서 아버지가 '책 도둑놈은 도둑놈도 아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책은 훔처서라도 보고 사례하고 돌려주면 된다, 고 그렇게 남도에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퇴근길에 책을 훔쳐(?) 집에 가서 읽었다.
사례는 《열하일기》에 대한 독후감, 실학파(實學派)처럼 행동이 중요하니 '독후행(行)' 해야겠다. 개략적으로 우선 읽어본다.
▪︎ 《열하일기》는 웃음과 역설의 향현이다
세종대왕 다음으로 한국사람들이 대왕!이라 부르는 정조대왕이다. 아래와 같이 말한 이유를 지레짐작해본다. 나도 이런말 한번이라도 들어보았으면...비판과 비난도 상대방이 그 만큼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Influencer)라는 자기반증이다.
근자에 文風이 이렇게 된 것은 박지원의 죄다
근자에 문풍이 이렇게 된 것은, (블로그 닉네임 순천짱뚱이, 고흥돌문어) 이재혁 죄다?
▪︎ 연암의 문체는 독특하다.
좋고 싫고는 그다음 문제다. 좋게 말하면 독특하고 비아냥거리면 특이하다. 쉽게말해, 조용필 돌아와요 부산항에~ 🎵 아니면 트로트만 듣다가, 응답하라 1992년도 서태지 난 알아요~ 를 처음 들었을 때 그느낌 그대로다. '저게 노래냐~시정잡배들 술주정이지~' 하는 것과 같은이치다.
조용필과 서태지관계는 정약용과 박지원관계요, 《목민심서》와 《열하일기》관계다. 그 중간에 정조(권력)이 자리잡고 있다. 지배권력이 어느쪽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한 사람은 위인이 되고 다른 한 사람은 미친놈이 된다. 그리고 데뷰 당시 미친놈(?) 서태지는 오늘에는 K-Pop의 선구자, 문화권력 처럼 들리는 문화대통령이라 불리운다. 우리 때는 정약용《목민심서》, 요즘 에는 교과서에 까지 실리는 책이 《열하일기》다. 우리 때는 저자와 책이름이 맞는 것을 고르시오, 그렇게만 외우고 정해진 것만 선택했다.
나도 연암처럼 '文風을 어지럽힌다(?)는 그런소리 한 번만이라도 듣고는 싶지만...
나는 아직 연암문체에 한참을 미치지(及) 못한다. 하지만 AI가 글쓰기에 시(詩)도 쓰는 시대에, AI가 유일하게 할 수 없는 것은 농(弄)이다. 농담처럼 들릴 수 있어도 의미와 여운이 있고 말이 되는(?) 글만을 써보고 싶은 욕심 만은 아직 나는 내려놓지 못했다.
블로그 닉네임 고흥돌문어 처럼 바위(돌)틈에서 살아 숨쉬는 글을 쓰고싶다.
▪︎ 文風 과 文體 ?
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아니다. 문체(文體)다. 사람의 몸(體)에도 스타일이 있듯이 글에도 그 사람의 문체(文體)가 있다. 박지원은 정조 눈에는 문체가 정상이 아니였다. 그럴때 쓰는 말이 바로 이말이다.
이상(異常)하다
그 한자뜻과 어감 그대로 평소알고 지낸 상식과 다르다. 정조는 연암의 천재적 기질에 놀라 형벌을 내리지는 않았다. '반성문'을 쓰면 죄를 윤허하겠다고 했다.
정조체면에 대신들 앞에서 낄낄대고 웃을 수도 없는 일이다. 밤일(?)에 궁녀 끼고 낄낄 웃었을지, 내시 말고 누가 알겠는가?
▪︎ 혜안을 혜아리다.
혜안? 국어사전을 찾아본다. 사물을 꿰뚫어 보는 안목과 식견이다. 오안(?)의 하나이다. 우주의 진리를 밝게 보는 눈이다. 모든 현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차별의 현상계를 편견 없이 보는 지혜이다.
연암 박지원이 중국여행으로 깨달은 혜안이 담긴 중국기행문이다. 세계, 세상을 보는 눈은 혜안이요, 혜안, 직관으로 꿰뚫어 보는 것을 통찰력이라 한다.
▪︎ 까먹은 이용후생(利用厚生)
교학사 교과서에서 본 게 너무 오래되어 까먹었다. 또 국어사전을 찾아본다. 기구? 한자로 무슨 "기" 자이지? 사대부ㆍ양반들이 한자만 읽고 쓰고 하며 끼고 놀던 기생 기(妓) 자가 아니다. 그릇 기(器) 자를 쓰는 기구(器具)다. 나도 듣지도 보지 못한 중국글에서 진리를 찾는 사대부ㆍ양반 흉내를 내자면, 가출 구(具) 자를 쓰니, 먹을 그릇, 입을 옷, 마실 술, 의식주와 산업사회에서는 기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 기구(器具)다.
실생활에 사람을 편리하게 하는 '기구"를 만들고 '사용(用)'하여 실생활을 '편리' (利)하고 '널리 이롭게(利)' 하는 것이 이용후생(利用厚生)이다. 교학사 학창 시절에는 그냥 잊혀진 계절 🎵 곱슬머리 '이용' 하며 외었지만,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 🎵 '이용후생' 이라는 그 말만을...
이용후생, 기구, 그릇 기(器)하니, 어~! 그릇 하면 우리 고향인데...
아하~! 조선에서 그릇을 가장 많이 그 곳에 그 터인데...
▪︎ 고흥분청문화박물관
고향길 순천에서 해룡, 별량, 벌교, 동강, 과역지나 두원(豆原)? 콩(豆) 심는데 콩 나는 금반옥저(金盤玉箸)의 땅 두원면인데... 그 두원면사무소 들어가는 고흥읍 가지 전에 내 글이 옆길로 가끔 새듯, 옆길로 새는 운대리에 있는 <고흥분청문화박물관> 이 바로 이용후생, 기구에 '그릇' 만들던 곳이었는데... 그것도 조선 사대부ㆍ양반들 그릇 만들던 곳이었는데...
▪︎ 牛竹島의 신우대?
화살촉 이외 화살의 기다란 몸통을 화살 전(箭)에 대죽(竹) , 箭竹이라한다. 전죽을 만드는 대나무를 신우대 또는 시누대라 부른다. 내가 어릴때 어른들이 많이 쓰던 말이다.
어~! 두원면에는 왕과 사대부들이 활에 사용되는 전죽을 만드는 대나무가 자란 우도(牛島)도 있는데...우도는 조선시대에는 우쥐도(牛竹島)라 불리웠다.
만약에 '조선 왕 활쏘기 대회'가 열린다면, 누가 메달리스트인가? 동메달 태종 이방원! 은메달 태조 이성계! 금메달 정조 아닐까? 그 정조대왕도 애용했을 우도의 신우대/시누대.
옆길로 세는 운대리에서 또 몇 번을 옆길로 세야~부모님 산소가 나오련만, 불효자는 차를 광주ㆍ벌교 동강방향으로 돌려 남양면 우도로 간다. 가는 날이 장날 장마철이라 날씨가 흐리다. 고교동창 광양사는 짝꿍이 내 블로그 <우도 가는 길 ; 우도의 아이들 이야기>를 읽고 보내준 사진이 최고다. 나처럼 눈썹이 찐했던 짝꿍 녀석이 사진빨은 나보다 훨씬 낫다.
고향 순천길부터는 나는 '내비게이션'을 끈다. 나의 시야를 좁히고 시키는 그 한길로만 가게 만드는 주범이 '네비' 다. 꽃길 나비(Navi)가 아니라 기계 '네비' 다. 지도를 펼치니 정겨운 진상(?) 짝꿍이 살았던 광양진상이 어디지? 내가 가고 싶은 대로 옆길로도 새보고 꽃길을 간다. 그러던 차에 차(車)를 보니 "어~ 조선의 현대차, 기아차 말목장" 이 순간 뇌리를 스친다. 차를 여수 백야도 로 돌린다. 백야도, 나로도, 녹동 도양곶 모두 명마들이 남도인과 공존하며 자란 곳이 아닌가. 말은 제주도로~? 아니다. 제주말도 서울가기 전에 유년시절을 보냈던 곳이 도양관(곶)이 아니었던가. 제일 큰 말목장 본사(?) 도양곶의 지점이 우슬관(도덕면), 나로도, 백야도였다. MBC다큐 <여수섬섬백리길> 백야도편에 말을 제사 지낸 사당을 본 기억이 난다. 고흥문화원 편찬자료, 제1장 '고흥의 역사개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7. 조선시대 고흥에 말목장이 있었다
어~! 하니 근데? 그리고 格君
어~! 실생활과 나라 지키는데 꼭 필요한 기구 ; 그릇, 화살, 말을 만드는 남도와 고흥이었는데...
근데? 왜 한양의 양반ㆍ사대부들이 시피(?) 얕잡아 보았을까? 교학사 교과서에 배운 것도 아니요, 남도 어르신들한테 내귀로 들은 말이 있다.
권투 류제두, 박치기 김일처럼 힘센 장사들이 고흥에 많아 그 조상 할배들이 임진왜란 때 배를 저었네... 배우지는 못했어도 품격이 있는 사나이 남자 격군(格君)이라고 하네... 이순신 장군이 그 애쓰고 완도에서 부산까지 노 저은 격군들을 제일 못 잊어라 해서 그 공(功)으로 서방각시도 맺어 줬다네...
근데? 왜? 그 격군의 후손 농부들은 동학 때는 죽창을 들고, 여순 때는 총을 들고 반란군이라고 시피 보는 말을 들었을까?
우도에서 차를 다시 돌려 고흥읍으로 가니 존심당(存心堂)이 차를 멈춘다. 기름이 엥꼬(?)다. 차에는 기름 넣고 내 몸에는 장어를 넣는다. 이름도 한(恨)이 담긴 아리랑~고흥읍 '아리랑 산장어' 식당에서 다시 의기를 충천한다.
옛 고흥군청 자리 존심당(存心堂)에 자존심, 존심, 존심, 자존심 하며 간다.
그곳은 1884년 갑신정변의 주역, 보수언론 기자까지, '아까운 사람을 고종이 죽였다' 고 평가한, 고흥현감 김홍집이다. 그가 갑신년 이전에 3년 동안 현감을 지낸 곳이 흥양(고흥)이다. 격군의 후손들은 그의 실용(實用)과 애민(愛民)정신과 실천에 반해 12개 면(곳)에 선정비를 세워주었다. 급진도 아니요 온건개화파 김홍집은 벌교 광주를 지나 서울에 가서 내각 총리대신을 지낸다.
고종과 가까이 있어 김홍집 생각을 잘 알았을까? 고종이 암살할 것이라고 지인이 미리 알려 주었음에도, 그는 고종을 설득하려다 결국 암살당하고 두 번 죽인다고 서울 사대부ㆍ양반들에게 돌 맞아 시체도 갈기갈기 찢겨 죽었다. 그리고 파주군 하고 그것도 임진왜란을 연상케 하는 임진면(?)에 묻혔다 다시 가족묘가 있는 고양시 덕양구로 이장됐다.
나는 신혼살이 할 때, 덕양구 행신동 서정마을(?) 마을이름에 끌려 이사 갔는데 내가 그 서정마을에 끌린 것은 우연일까? 고종이 김홍집 말을 들었다면 일제가 한일합방을 했을까? 고흥류 씨 유관순의 시조인 류청신, 고려 충렬왕 때 원나리와 실리외교를 한 외교관 류청신 대장군에게 물어보고 싶다.
더불어,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박물관> 한창기 선생에게 물어볼까? 선생 이름 앞에는 이제 고(故) 자가 붙어 버렸다. 한창기 선생이 한국 최초 우리말 가로쓰기 잡지표지에 '쌀'을 움켜 쥔 '손'을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하여간, 남도는 뿌리깊이 실학(實學)ㆍ실용(實用)의 장인정신이 묻어있다.
빙부(聘父)라고도 불리는 그 장인(丈人) 아니다. 장(匠)은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사람을 뜻한다. 남도여행으로 아하체험을 한다. 고흥문화원 발간 자료에 따르면, 제1장 <고흥의역사개관> 제8장에 아래와 같이 적혀있다.
8. 조선시대 고흥은 최고품질의 전죽(신우대) 생산지였다
아하~! 운대리에서는 <손>으로 그릇을 빚어내고, 우죽도(牛竹島, 우도)와 죽도에서는 손으로 활몸통 전죽(箭竹)을 만들고 손으로 말(馬)에 먹을거리를 장만한 장인(匠人)들이 남도에 많이 살았다.
중국 한문이 쓰인 책을 손으로 넘기지는 못하고, 대신 '손'으로 몸을 움직여 '이용후생(利用厚生)"에 필요한 기구(器具)를 만들어낸 기구(?)한 운명의 남도사람들이었다.
연암이《열하일기》가 궁금해지는 이유는, 직접 몸을 움직여 이히! 체험하여 연암이 터득한 혜안을 썼기 때문이다. 연암은 중국으로 여행을 떠난 북학파(北學派) 실학자였다. 연암시대에는 중국이 한 번도 보지 못한 드넓은 세계의 세계관을 넓히는 장(場)이었다. 연암이 압록강에서 울었다면 나는 섬진강, 보성강에서 울어 볼만하다. 신생아가 울음을 엄마의 배속에서 세상에 눈을 뜰 때 울음을 터트리듯, 나이 들어 세계관(觀)에 넓게 보는 눈을 뜰 때, 슬픔과 기쁨의 눈물이 교차하는 곳을 호곡장 (號哭場) 이라한다. 그리고 이 드넓어지는 세계관을 논하는 것을 호곡장론(論)이라 한다.
• 인생전반전 : 오늘도 세계를 주름잡기 위하여
• 인생후반전 : 오늘도 세계관(觀)을 주름잡기 위하여
나는 섬진강, 보성강 줄기 따라, 다도해 바다에서 호곡장론(論)을 펼치고 싶다. 그 호곡장론이《남도와 사랑에 빠지는 인문학기행 》이다. 부족하나마, 연암이 북학파였다면 나는 나름(?) 남학파(南學派)라 하겠다. 하지만 南北이 결은 비슷하다.
세계관을 넓히고 꿈꾸는 이상향 연암은 그것을 '여자'로 표상했다. 연암은《열하일기》에서 자신의 이상향(여자)를 중국에서 처음 보았다, 고 적었다.
어~! 나도 그렇다. 나의 이상향을 나도 얼마전 남도(장흥)에서 처음보았다. 아내 닮았나? 고향 깨복쟁이 꽃순이 닮았나?
하여간, 이런 연상(매칭) 기법으로 열하일기 그곳과 남도의 그곳을 오버랩하여 기행문을 써보고 싶다.
이번 여름휴가는 《열하일기》를 읽고 남도여행을 하며 <남도일기>를 써야겠다. 연암은 북쪽 중국에서 조선에서 보지못한 이상형의 여자와 조우했다. 나는 남쪽 남도 장흥에 살았던 이상형 여자와 조우했다. 내가 찾은 이상형의 여자(?) 이름은 잔다르크다? 프랑스 갈 여유는 못된다. 조선의 잔다르크 '이소사' 를 만나러 남도에 간다. 그렇게 뀌뜀만 하고 1편 글을 마친다.
초인의 철학자 니체는 말한다. '진리가 여자라면?...'
그 의미도 되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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