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남도여행

글로벌 정조와 남도의 정조

고흥돌문어 2024. 8. 30. 16:57

글로벌한 大王이 있다. 세종대왕? 아니다. 정조대왕이다. 정조는 왜 글로벌 했는가? 연암 박지원 때문이다.
박지원하면 뇌가 누구를 떠올리는가? 목포의 눈물 ?최근에 살아있는 허정무 감독 흉상을 진도에 세운 그 박지원?

중년세대 이상 교과서에는 조선성리학의 대가 이황, 정약용 《목민심서》에 대한 설명은 자세히 나오고, 연암 박지원은  실학파였다는 것만 나오니 중년의 뇌가 까먹은지 오래다.
《열하일기》는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고 내가 두원中을 다니는 건지 다음中을 다니는 건지 헛갈릴 때도 있었다.
하여간, 다음중 그네들이 선택한 것에만 고르게하니 나는 새장에 같힌 앵무새처럼 살았다. 그들이 정한 새장 안에서만 갇혀 살았다. 글로벌 가수 싸이가 왜 🎵 나 완전히 🐦 된네~그랬는지 새로이 새롭게 생각해 봐야겠다.

글이 옆길로 새면 날새니, 하여간 정조는 그날에 이렇게 말했다.

근자에 조선의 文風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박지원의 죄다.

그렇게 말하고 연암을 불렀다.

그날에 조선에는, 쇠죽한번 써보지도 않은 선비양반들이 이황의 文을 읽었다. 그 선비들도 그 틀, 새장 안에 갇혀살았다. 그리고 가끔은 트인 사대부나 선비들이 茶山의 글을 읽었다. 오늘에 나는 茶山에 호를 보니, 오늘날에 배왔다는 배운 직장인들 큰 어르신 같다. 주중에 회사에서 커피나 차(*茶) 마시고 주말에는 골프나 등산하러 (*山)으로 와따리 가따리 하니 딱 내모습이요, 오늘날에도 茶山의 삶은 이어지고있다. 차라리 쇠죽은 누가 쓰냐고 말했던 쇠죽論 島山선생이 좋을려나...

그날에 연암은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이황은 중국꺼 베끼고 뻔한 말만 하네~茶山은 한애기 또 하고 의미는 있으나 재미가 없네~더운날에 심심한 음식처럼 글이 무미건조(無味乾燥)하네~그렇게 말하며 연암은 글을 읽으면 선비들은 뜨끔하고 백성들은 웃기라도 하게,  살아있는 글을 재밌게 써봐야 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쇠죽 한번 안 써본 조선선비들이 얼마였던가. 공자왈 맹자왈을 논하는 선비들의 말폼새보다, 쇠죽 쓴 良人이나 뭐라도 만드는 匠人이나 놀아본 놈이 잘 논다고 광대들과 함께 놀며 그들의 말을 연암은 유심히 귀담아 들었다. 그 《너무나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다운 사람 글을 쓴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연암 박지원이다.

그렇게 하여 탄생한 글이 사람들을 호랑이가 꾸짖는 《호질ㆍ虎叱》이요, 청나라여행기《열하일기》였다. 선비들은 그 책을 읽고 말 많은 특이한 놈이네~이상한 놈이네~하며 놀렸고, 그리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정신 사나운 글이네

호랑이가 글도 쓰고 자기들을 꾸짖으니 당연히 이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정신이 왜 호랭이처럼 싸나워 진것인가? 뇌 안에 호랭이가 들어있는 것인가? 니체는 왜 인간성장론에 낙타와 아이의 단계 중간에 고정관념을 깨야하는 사자의 단계가 있다고 했는가, 뇌 안에 사자가 들어 있어 정신이 싸나운 것은 아닌가. 그날에 활쏘기나 하며 동물죽이는 사냥에 길들여진 정조의 뇌처럼, 오늘에도 돌직구쇼와 같은 신문이나 뇌에 길들여진 뇌는 당연이 이 말이 나도 모르게 나올 수 밖에 없다.

정신사납네~
(=정신 싸납네~)  

하여간 선비들도 정신 사나웠으니 궁안에 새장에서 같혀 사는 정조는 오죽하였겠는가. 즈그 아부지 사도세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맘에 안든다고 영조를 죽인다고 즈그 아부지 한테까지 칼부림까지 했던 호로자석에 내시궁녀들은 뭔 죄라고 옷이 맘에 안든다고 칼로 베어죽여 버린 싸가지 없는 사도 산소 지킨다고 수원성을 쌓았다. 되놈들 처들어 오니 성을 쌓아야 된다는 명분으로 즈그 아부지 산소 들를때 연회나 즐기며 쉬는 성을 쌓은 王이 정조다.

한양에는 오늘날 처럼 쇠죽 한번도 써보지 않은 선비들만 바글바글하니, 남도에서 활 만들고 그릇 만들고 말 키우고 벽돌 쌓고 유명한 匠人 나무목수들을 불러 수원성을 쌓았다. 그 정조를 大王이라 불렀야 하는가? 《역사란 무엇인가》?  그날에 정조가 수원성을 왜 만들라 命 했는지 직접 본 오늘의 역사학자가 있는가? 역사는 역사가의 사관으로 본 역사적 사실 일 뿐이다. 장흥 천관산을 내려 올 때 집에서 소를 키운다는 한 村夫가, 내가 이순신 이야기를 꺼내니, 영웅이 따로 있다요~날 키와준 울 아부지가 나에게는 영웅이제~그 말씀에 나는 할말을 잃은 때도 있었다.

또 하여간, 그날에 정조는 연암이 문풍을 어지럽힌 죄를 벌하였다. 그날에 연암의 문풍은 정조가 조용필 노래만 듣다가 갑자기 서태지가 🎵  난 알아요~🎵 하여가~를 부르니 정신사나울 수 밖에 없었다. 정조는 연암을 주리를 틀고 하옥시켰을까? 아니였다. 반성문을 쓰게했다.
그리고 영의정을 불렀다. 이렇게 令을 내렸다.

애좀 글좀 못 쓰게 어디좀 보내버려!
반성문을 꼭 쓰게하고 꼭 받어라~

연암은 그렇게 청나라로 여행을 떠나게 됐다.  건륭제 생일을 맞아 청나라 황제 생일날 기쁨조 사절단으로 우연히 청나라를 가게됐다. 그 우연한 여행으로 우연히 발견한 아하체험을 글로 쓴 책이《열하일기》이다. 그리고 그 책은 중국이나 유럽, 미국에 전략가들이 읽는 글로벌 세계최고 여행기가 됐다. 정조가 글로 하라 하여 연암이 쓴 (文) = 반성문글로벌 세계여행기가 됐다.

글은 자기반성이라 했다. 한국철학의 거목 김태길님은 <글을 쓴다는 것> 을 이렇게 적었다.

안으로 자기를 정리하는 것 중에 가장 좋은 방법은 反省의 자세로 글을 쓰는 것이다.

그 반성의 자세로 望九의 나이에 병상에서 글을 쓴 고향 분이 있다. 고흥군 동강면 生, 순천中과 순천고교 출신 정영철 작가다.

그의 책《싹심이》는 누구일까? 궁금해진다. 요즘 유럽에서 인기 있는 인생 철학자 니체도 말년에, 진리가 여성이라면...으로 시작하며《선악의 저편》을 써내려갔다. 삶의 진리를 권력지향, 폭력성을 상징하는 남성性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섬세함과 사랑 그리고 포용성의 상징인 여성性에서 찾자는 것으로 나는 이해했다. 작가는 척박했던 어린시절, 나이들어 그리워지는 고향 그리고 삶의 진리를 <싹심이>에 대한 사랑으로 표현했다. 그가 남긴 말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정화요
글을 읽는다는 것은 자기 닭음이다

그리고 그의 친형이 바로 내가 알고 싶어지는 희극작가 정조이다. 남도의 희극작가 정조의 본명은 정영수, 내가 이제부터 기억 해야할, 남도의 정조다. 그의 작품을 적어본다.
그 안에는 내가 어려서 들었던 남도의 조상과 부모님들이 보았던 세상이 들어 있었다.

■ 《마지막 기수》■

■ 《영웅행진곡》■

■《어느 별들에 관하여》■

정영수, 남도의 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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