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대문짝에 이쁜 손자 사진을 넣고 다니시는 어떤 분이 나에게 묻는다.왜 법대를 가지 않고 신문방송학과를 갔나고 물으신다. 그래서 나는 그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대답했다.
MBC 정혜정 아나운서와 같은 이쁜 서울여자들 꼬셔 보려고 신방과 갔어요
그렇게 말을 하니 그분이 이렇게 맞장구치신다.
딴생각~어먼생각 했구먼~
그렇다~금메말시다. 꿈 많던 고교시절 오수시간에 나는 꿈을 많이 꾸었다. 어제는 유치환 詩 이상향(노스탤지어) <깃발>을 외고, 오늘은 허균의《홍길동전》공부하고 오수시간에 잠을 잤다. 내가 커서 고흥반도 땅에 깃발을 꽂고 있었다. 나의 율도국에서 세계를 주름잡고 있었다.
그 깃발의 의미가 그 시절 공부할 때는 남도 동부에서 순천이 교육의 중심지였지만, 오늘에는 남도 여행의 중심지는 고흥이 되고 남도를 연계한 스토리텔링 여행이 되어야겠구나~남도가 글로벌 관광지가 되는 그런 꿈이었구나~하는 생각도 해본다.
하여간, 그래서 나는 또 이렇게 맞장구 처 주었다.
선배님의 친형님《무진기행》에도 그런 내용이 나오잖아요
촌놈이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 가서 돈 많은 집 세련된 딸 꼬셔(?) 보는게 꿈이었으니까요
MBC드라마 김수현作 이덕화ㆍ김청 나오는 <사랑과 야망>도 있잖아요~
무엇보다, 오늘날 서울에서 세련된 여성들의 큰할매언니쯤 되는 여자가 누굽니까?
우리나라 제1호 신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을 꼬신 놈이 누굽니까?
5대5 앞가르마에 들기름을 바른 고흥촌놈이 아니겠습니까?
선배님께서 말씀하셨다 시피,
소록도ㆍ녹동바다가 때가 덜타 회도 맛있지만,
사람도 때가 덜타 나혜석이 첫사랑을 못잊어라 <녹동풍경>도 그렸더라구요~
저도 깜짝 놀랬습니다...
그러니 그분이 이쁜 손자한테 전화온건지 전화를 받으시더니, 응 그랬어....하시더니 고교 한참 후배 나에게도 손자에게 주는 미소를 주신다.
응 그랬구나~
나는 오늘 한국 현대문학에서 1960년대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킨《무진기행》김승옥 거목의 동생 분을 만났다. <수사반장> 등 다수의 알만한 프로를 기획제작하고 MBC <PD수첩>을 기획하고 초대 앵커를 지내신 분이다. 형 만한 아우 없다더니 행님 만한 동상(?)ㆍ동생은 있었다.
《무진기행》이 어떤 내용인가?
주인공 윤희중이 무진(순천)에서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에서 출세(?)했다는 내용 아닌가? 출세가 무엇이었나? 제약회사 사장에 돈 많은집 딸하고 결혼을 한다. 그덕에 주주총회에서 임원(전무)승진까지 앞두게 된다. KBS TV문학관에도 방영됐다. 주인공(박근형 粉)이 아내(선우옹녀 粉)에게 꼼짝 못하며 한숨 쉬며 집에서 티브이를 보고있다. 리모컨이나 돌리고 있다. 아내가 '임원승진은 내가 잘 처리해 놓을테니' 고향이나 가서 쉬고 오라 말한다. 그렇게 무진기행은 시작한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진에 명산물은 안개다
그렇게 나는 순천만습지의 안개를 헤치고 순천만습지에서 한참을 걸어 <김승옥관>으로 갔다.《무진기행》들머리에 나오는 <무진 10km>라는 이정표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순천만 습지에 문학관을 가는 이정표가 없으니 1km는 10km처럼 멀어 보였다. 드디어 도착했다.
어~? 초가집이다~!
조선의《홍길동전》소설을 쓰신 분도 아니고 현대소설을 쓰신 분인데 왜 초가집에 있지 뭔가 불협화음이다.
순간 밥 먹고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만 연구한 실존주의 철학의 아버지 하이데거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현대 한국 언어(語)를 쓰는 한국인들은 조그만 초가집에서 사나?
한국현대 문학 거목의 집이 초가집 이라니...
《무진기행》은 일제강점기와 전쟁 이후에 상처를 딛고 일어서며 산업화로 가는 과정에서 한국인의 존재에 대해 물음표를 던진 소설이다.
감수성 있는 언어로 문학계에 혁명을 일으켰다. 그렇게 언어와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켰다고 오늘에도 평가받는 소설이다. 그런데 그 언어의 존재의 집은 초가집이였다.
정치에만 혁명과 위인이 있는 게 아니다. 문학계에도 혁명과 위인이 있다.《무진기행》이전의 소설들은 이념지향적이거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큐멘터리 소설이거나, 한자어가 많이 들어가는 소설이었다. 그러나《무진기행》은 산업화ㆍ현대화로 가는 자본주의 사회구조에서 한 인간의 존재로서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한국어로 응축하고 함축하여 그려낸 명작 중에 명작이다.
유럽에 헤르만헤세와《데미안》이 있었다면, 한국에는 김승옥과 《무진기행》이 있다. 1990년대 음악계에 서태지가 있었다면, 1960년대 문학계에는 김승옥 작가가 있었다. 서태지의 새로운 장르 음악이 오늘에 K-POP의 근간이 되었듯, 문학을 입문하는 작가들은 오늘에도 《무진기행》의 문장을 필사해 본다고 한다.
네이버에《무진기행》과 <김승옥관>을 소개하는 수많은 글들이 저 여성의 발처럼 올라와 있다. 어떤 여행객 여성의 발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저 그림을《무진기행》을 가장 잘 표현한 사진으로 꼽고 싶다.《무진기행》은 폭력과 파괴의 남성性이 지배하는 세계와 한국을 휘몰아치던 사회에서 섬세함과 포용성으로 상징되는 여성性이 충만한 이상향을 여성性의 섬세한 언어로 묘사한 작품이다.
하이데거 실존주의 철학의 핵심은, 사람 윗부분에 달린 눈으로는 실제로 눈에 보이는 존재자(사실 ㆍ현상)만 보이지만, 인간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진실)의 신성함은 숨겨져 있고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 여성의 발밑(내면ㆍ마음)에 무진(존재ㆍ진실)이 있는 것이다. 그런 깊고 깊은 삶의 철학을 함축된 언어로 표현한 존재의 집이 단편소설《무진기행》이다. 숨겨진 존재의 집처럼 상옥동생님으로부터 승옥형님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김승옥과 이청준
김승옥 작가는 20대 초반에 《무진기행》을 썼다. 그리고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생명연습》이라는 처녀작이 당선됐다.《생명연습》은 별거 아니다(?) 우리시대 남도 村에서 상경한 노상 나도 보고 들었던 이야기를 소설로 은유하고 상징하여 그려냈다. 김승옥 작가는 남도 동부 순천에서 자랐고, 남도 서부 장흥에서 자란 현대문학의 거목이 또 한분 계신다. 바로 지금 상옥동생이 청준이 형이라 부르는 이청준 거목이다. 청준이 형(1939년生)은 김승옥(1941년生) 형보다 2년 형이다. 전라도 2년 후배 승옥이 동생이 신춘문예에 당선되니 문학청년의 그 심정이 오죽했겠는가. 소설을 썼다. 그러나 군대영장이 나왔다. 군대에서도 소설을 썼다. 그리고 사상계에《퇴원ㆍ退院》이라는 작품을 발표하여 당선됐다. 1963년 김승옥의 《생명연습》이 당선된 3년 후 1965년! 일이었다.
☆남도의 신사임당
승옥이 형은 고교시절에 성문종합영어 공부 하지 않았나요?
영어와 문법이 국어로 글 쓰는 실력을 다 버려 놨는데 그 시절에도 글쓰기를 어떻게 했데요? 글쎄...
초등학교 일기 쓴 후로 영어 수동태 문장을 한글로 옮기는데 온 정신이 팔렸던 나의 질문이었다. 상옥이 선배형님이 답한다.
우리 집에는 승옥이 형이 보던 사상계나 현대문학잡지책이 많았어~
덕분에 나도 조기교육 한 셈이지...
승옥이 형은 고교시절에도 책방서점에 가서 이런저런 문학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책을 살 돈이 없으니 책방에 서서 읽고 사지는 못하고 꽂아 두었다고 한다. 책방주인이 어머니에게 꼰지른(?)건지 어머니가 어떻게 알고, 그런 아들이 안쓰러웠던지 책방주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아들이 읽고 싶어 하는 책은 내가 월말에 어디서 돈 꿔서라도 꼬박꼬박 다 계산해 줄 테니...
아들에게는 두말 말고 책을 그냥~내줘 붇시오 이...
한석봉 어머니가 대단하더냐,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이 더 대단하더냐, 오늘의 현대문학 거장에게는 그 남도의 어머니가 있었다. 꼬막이나 반지락을 팔아서라도 어떻게든 자석ㆍ자식들만은 갤차(?)ㆍ가르쳐야 하는 그 어머니의 마음이 현대문학의 거목을 낳았다.
☆김지하와 김승옥
야~이놈아~모난 돌이 정 맞는다~서울 가서 나서지도 당하지도 말고 살아라~는 그 남도 어머니들 마음에도 나선 이가 있었다. 소설 《토지》의 박경리의 사위로 강원도 원주에서 사망한 이가 있다. 바로 목포生 시인 김지하다. 전라선을 타는 김승옥은 소설을 쓰고 호남선을 타는 김지하는 詩를 썼다. 김지하 시인도 시보다 소설을 쓰고 싶었나 보다. '지하형 이 승옥이 형에게 원고를 한 뭉텡이 가져와 좀 봐달라' 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원고를 승옥이 형이 가만히 읽더니 하는 말이다.
지하 너는 소설 쓰지 말고 시~쓰고 있네라는 소리를 들어도 소설보다 시나 써라~
그랬더니 김지하 시인이 다음부터는 원고의 제목을 小說이라 하지 않고 이렇게 제목을 달아 승옥이 형에게 가져왔다는 것이다.
大說
티브이에서 본듯하다. 1941년 동갑生 벗이었던 김지하 시인이 사망하고 큰 슬픔에 빠져 김승옥 작가는 몸이 많이 안 좋아지셨다. 고향순천에도 내려오셔 한참을 고향에서 기거하셨으나, 지금은 돌봐줄 사람도 필요하니 서울에서 지내시고 계신다.
☆천경자와 김승옥
천화백 서양미술은 했어도 구수한 고흥 말로 항상 말했는데...
남도 이야기에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는 고흥이야기에 천경자 화백을 생전에 만난 상옥이 형이 천경자 화백을 두고 하신 말이다. 그래서 나도 이렇게 맞장구를 쳤다.
사람들이 미친년(?)이라고 하는 그 미친년이 《무진기행》에서 주인공이 무진역에 도착했더니 나오고,
꽃과 여인의 화가 천경자 화백이 그린 미친년(?) 같은 여인들의 그 노오란 색이 딱 고흥 유자색이요~유자색!
길례언니는 지금은 소록도 할매천사로 불리는 마르안느ㆍ마가렛 같은 소록도 간호사, 천사구요~
☆정채봉과 김상옥
그렇게 현대도시인의 상징 서울강남에서 남도이야기를 오지게 했다. 우리는 지하철에서 헤어졌다. 집에 가는 길에 네이버에 <김상옥 피디>라고 검색해 본다. 이 말이 내 마음을 적신다.
채봉이는 광양을 사랑했던
광양사람이에요!
순천만습지 한켠에 있는 순천문학관에서 나는 초가집으로 된 兄 <김승옥문학관>과 그 옆에 있는 弟 <정채봉관>을 얼마 전에 보았다. 그리고 나는 고흥누님집에 이 책을 놓아두고 무진기행 주인공이 무진을 떠나듯 고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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