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여행/고흥여행

고흥ㆍ벌교사람 박노해 노동의 새벽과 시의 새벽 그리고 눈물꽃 소년

고흥돌문어 2024. 11. 22. 11:23

시 쓰고 있네~
소설 쓰고 있네~

이 말의 어감이 왜 변해 갔는지 곱씹어 보는 소설날 아침이다.
오늘이 24절기에 小雪이다.

주말 고향 향우산행에서 박노해 시인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고, 박노해 시인에 꽂혀 고향에서 가져온 책을 다시 읽어 보았다

(노해의 아버지는) 여순 10ㆍ19로 피신하여 여기(?)를 떠났다.
멀리 함평으로 도피하여 소리꾼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노해를 낳은 것은 이때의 일이었다.

몇 해 전만 해도 술 먹고 뻔한 이야기에 한 애기 또 하는 하는 시간이었으련만, 어젯밤에는 유튜브 티브이화면으로 나오는 박노해 시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잠에 들었다.

고흥에 갔을 때 담벼락에 베림박에 벡짝에 쓰여 있는 이 말이 무슨 말일까?
유자꽃이 한편의 시?
유자나무가 쓴 아름다운 시라니?
이말이 무슨 말일까 궁금한 적이 있었다.

고흥읍 서문리~행정리 담벼락(베림박? 벡짝?)에서

궁금하던 쯤에 오늘은 무릎을 친다.
무릎에 모기?
소설(小雪) 날이라 모기는 없다.
인생후반전에 새롭게 알아가는 <아하~! 체험>에 무릎을 친다.
박노해 시인이 고흥 담벼락에 의미를 말한다.
왕종근 아나운서도 어느 시론강의에서도 들어보지 못해 흥미로워한다.

詩란 무엇인가?

그렇다.
영화 <명량>에서 진구할배가 말못했던 각시에게 울부짖는 말처럼 바로, 바로 그거네~! 다.
왕종근 아나운서가 시 쓰는데 시의 스승이 있었냐고 되묻는다
시인은 어머니(고향, 고흥동강, 보성벌교)가 스승이었다고 말한다.
시인은 동강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동강초등학교, 벌교중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시 스승이 하나 더 있다고 말한다.
시골에서 요절한 짠하디 짠한 부모 있으면 동네 사람들이 거두어 주었던 아이와 형, 시골 우리집에도 있었다고 들었던 그 시절 일하는 더부살이 머슴형,
세상 누구보다 가진 것 없었지만 순수했던 담살이 머슴형...
그 더부살이 담살이 머슴형이 봄날에 진달래 꽃을 보고 시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또 궁금한 게 있었다. 유명대 국문학과 교수들이 남도의 서정시인 고흥生 송수권 아재시인의 시어를 읽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말에 이렇게 아름다운 말이 있었나?...

왜 배우고 배웠고 詩박사들, 고향 아짐들 말로 박사들이 못 배웠던 사람들 이녘들 자네들 말에 경탄을 하는 것일까? 남도 부모네들이 노상 쓰던 말에 시(詩) 박사들이 경탄했다.
살벌한 그 시절 대공 공안부에서도 얼굴 없는 시인 고흥ㆍ벌교사람 박노해 시를 보고 이런 말들이 오갔다고 한다.

고학력자 엘리트가 아니면 이런 글(詩)을 쓸 수없다

노벨문학상 한강작가도 이렇게 말했다.

어려서 내가 시와 소설을 쓰고 싶다 하니 아버지가 그럼 장흥에 자주 내려오라 했어요

내가 어려서 그날은 부모님이 들녘에 나가시는 노동의 새벽이었다. 오늘 새벽에는 단톡방에 시가 배달되었다.
시의 새벽이다.
정호승 시인의 <마음에 집이 없으면>...

마음에 집?
밥 먹고 인간이란 무엇인가? 산다는 게 무엇인지 <實存>이란 무엇인가만 연구했다는 세계가 인정하는 실존주의 철학자 아버지 하이데거의 말도 떠오른다.
요즘은 어려서 내가 남도에서 듣고 보고 경험한 그 무엇과 세계석학들의 말이 서로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놀라고 놀란다. 남도의 그 무엇은 인류보편의 가치였나?

아니, 그보다 칠순을 바라보는 시인의 얼굴이 내가 서울하늘에서 보았던 그 어느 회장님, 상무님 얼굴보다 곱디곱다.
젊은 오빠 얼굴이다.

중학교책에서 누구나 읽었고 까마득히 잊어버린 <큰 바위 얼굴>, 남도의 큰바위얼굴 일까?
그시절 고향에서 교과서를 읽던 중학생에게도 무언가 여운으로 남았던 <큰바위얼굴> 에도 시인이 있었다.

시란 무엇일까?
시가 궁금한 소설날 시가 흐르는 새벽이다.
《눈물꽃 소년》도 궁금하다.
잠들기 전에 듣고 자면 잠이 솔솔 온다는데...
눈물꽃 소년이 많은 새날이 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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