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新동학혁명이라 할만한 일이 일어났다.
분노한 남도 농민들이 트렉터를 타고 남태령을 넘어 서울로 입성했다. 경운기를 타고 상경했으면 어땠을까, 황소를 몰고 왔으면 어땠을까
그보다 더 놀라운 만한 일이있다.
여의도 대신증권 빌딩 앞에 서있던 우람한 황소가 내고향 황소라는 것이다. 고흥군 두원면 남도 황소라는 것이다. <마당을 나온 암닭>이라는 에니메이션영화가 있듯이 두원땅 <넓은 벌을 나온 소>다. 대신증권을 다니는 고향친구도 몰랐다는 것이다. 친구에 놀람이다.
어! 그래~정말? 진짜?
자본주의 꽃이 주식(증권)이고 증권사가 즐비한 여의도, 대한민국 금융의 심장부에 우뚝 서 있던 '황우상(黃牛象)' 이라 불리던 황소, 그 황소가 내고향 고흥 두원면 황소라니 어찌된 일인가?
증시활황을 영어로 Bull Market이라 한다. 농부가 농사를 지으려 소를 사고 키우듯, 사업가는 기업을 운영하는 자금을 모으려고 주식(증권)을 발행한다.
대신증권 창업자 전남 나주출신 양재봉 회장은 1994년에 전남대 미술대학 교수에게 황우상 조각을 의뢰했다. 황소상을 조각한 이가 바로 내고향 고흥 두원면 용산리 신월(新月)마을 태생 김행신 교수다. 질박하고 질펀한 삶의 고향 땅을 나온 미술조각가다.
여의도에서 직장을 다녔던 나는 대신증권 앞에 서있던 그 소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어! 어디서 많이 보던 황소 느낌인데~???
아버지와 함께 밭을 갈며 소 길들이는 그날도 스처간 때도 있었다.
소 길들임이다.
나이들어 알고 보니 소만 길들여진게 아니었다. 사람인 나도 소 길들임처럼 누군가에 의해 무언가에 의해 길들여졌다.
소는 척박한 땅 밭을 간다.
그날에 소는 처음에는 삐툴빼툴 가더니 어느순간 부터 반듯이 갔다.
소가 뒷걸음질 칠까바 겁이 났다. 아버지는 소는 절대 뒷걸음질 치지 않으니 무서워 하지 말라하셨다
소를 믿고 줄을 잘 잡고 따라 가라고..
아버지는 그날에 말씀하셨다.
소를 믿어라
그렇다.
길은 믿음이다.
송수권 고향시인은 고향 두원에 바치는 헌시 <길>에서 길은 믿음이요 축복이라 했다
고약한 냄세가 나는 누리장 나무 잎사귀에도 민달팽이가 지나간 흔적은 있다고 시인은 말했다
그길은 인생길이기도 하다.
두원땅에서 자란 사람들을 민달팽이로 상징한 것일까
황우를 조각한 고향사람 조각가 이름도 믿음의 길이다. 구불구불 시골길이자 술통길 두원길...
두원길은 믿음의 길 행신(行信)이었다. 무아지경이라 했던가, 두원길은 편의점도 없는 암끗도 없는 길이기도 하다. 하늘과 (갯)바람과 별과 시가 있는 길이다.
설명절에 부모님 산소가 있는 믿음과 축복의 두원길을 걸었다. 마을 뒤편에 뒷개라 불리던 갯길을 따라 걷는다. 대전리에서 차범근 축구감독 집이 있는 예회리를 지나 어머니 갯일하던 성두리 뒷개 찍고 용산천을 걷는다. 용산천은 갯천에서 용나던 곳이다.
황우상 김행신 교수와 황소가 살던 마을이 보인다. 신월마을과 와룡마을이다.
득량만을 사이에 두고 저멀리 우도(牛島)가 보인다. 사람과 소가 함께 살며 공생(共生)하던 소의 섬>쇠섬이라 불렸던 섬은 누군가의 잣대로 소를 닮은 섬, 눈요기쯤으로 볼거리 우도(牛島) 한자어로 변해버렸다. 사람과 소가 살던 소의섬에서 소를 닮은 섬으로 변해버린것이다. 지배권력의 담론(談論)이라 했던가.
안방에서 아버지는 댕길 行이라 한자를 읽으시고 어머니는 핵교 댕겨오니라~하시던...
나에 살던 고향에 그날이 반도 끝 추억이 득량만 갯바람과 함께 실려온다.
두원땅 넓은 벌에 거센 갯바람에 닭아진 두원소와 나, 그리고 우리었다.
산을 먹은 소였다.
대동마을 산에 올라 득량만 풍류(風流)마을과 월하(月下)마을 해변을 보았던 두원의 동심 오순택 선생도 떠오른다. 서울아이들은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두원의 동심을 읽고 자란다. 두원의 동심은 月下에 月心이요, 두원의 품성은 風流와 大同이라 할만하다 .
그 두원땅에 있는 <갑재민속전시관> 을 향해 걷는다.
교사로 은퇴한 갑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두원운대초등학교를 개조해 만든 곳이다.
순천낙안 <뿌리깊은 나무 박물관>에 한창기 선생이 수집한 전통공예품이 있다. 고흥두원 <갑재민속전시관>에는 갑재선생이 수집한 남도의 민속생활품이 있는 셈이다.
학창시절 시골집과 추억의 학교 교실도 재연해 놓았다. 그곳에서 나는 두원소를 또 만났다.
여의도에서 봤던 근면과 인내로 생을 살아온 두원소, 황소를 고향에서 또 만났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 교가도 부르며 남파랑길을 싸목싸목 소처럼 걷는다.
반도끝 갯바람에 닭아진 두원
근면과 인내로 이루어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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