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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과 安東 ; 남도의 안동은?

고흥돌문어 2024. 6. 29. 13:01

여행은 문화답사기라는 분이 있다. 아니요, '우연의 발견' 여행법이 최고라는 분도 있다. 우연과 우연 우연이 계속되면 우연이 필연이 된다. 필연이 우연이 되고, 그것이 역사가 되고, 《역사란 무엇인가?》 저자 E.H Carr 카를 연상한다. 요즘에는 E.V. 전기차도 나오는데 전기차 타고 음악극 《섬》소록도나 가볼까?
소록도 '보리피리' 시인 한하운은 전라도 길이 가도 가도 끝이 없다는데... E.V 전기차 타면 기름값이 아껴지려나...조용필 노래 <돌고 도는 인생>,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도 참 좋은 아침이다.

어제는 퇴근후 대학선배의 초대, 거리가 멀어 망설였지만 부드러운 강요(?)로  시훈이형도 보고 싶고 늦게나마 《듣는 안동>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 본래 사람이 쓰던 말은 회사 보고서, 컴퓨터 언어가 아니고 시어(詩語)였고 '은유적 삶'이라는 말도 있었던가?  무엇을 까먹지 않고 뇌를 몰랑몰랑하게 하는데 '삼행시'가 으뜸이다.

♤노시훈♤

(노)원구  중계동에 갔다
(시)훈이 형을 몇십년 만에 보던가
(훈)훈한 시간이 되려나

여행작가 시훈이 형이 고향이 안동이였나? 아니란다. 안동을 여행하다 안동과 사랑에 빠져 책을 쓰게 되었다한다. <아파트>  윤수일 노래에 <제2의 고향>도 있었던가? 아파트에 사는 은퇴자들과 주부들이 강연을 듣는다. 안동을 듣는다. 오신 분들이 다 안동이 고향이세요? 하니 전주사람, 순천고향  사람도 있다.

지붕이 없다. 강연장에 지붕이 없다고? 아니다. 중계동 주민센터 강단에서했다. 안동이 '지붕없는 박물관' 이란다.

어~! 내고향 고흥 슬로건은 지붕없는 미술관인데...박두대간 끝자락  금가락지가 떨어졌다는 구례땅이 금환락지(金還樂地) 이듯, 사람의 기운은 땅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그러고 보니 구례 운조루도 문화류시 류이주가 설계하고 지었다. 안동에 한옥고택을 보고 명당 구례에 대저택을 지은 것이다.  

가는길 지하철에서 안동지리를 본다. 워매~ 고흥과 딴판이다. 《프랑스와 사랑에 빠지는 인문학기행》에 빠졌나? 프라스에 파리정도 될 것같다.

안동시를 사이에 두고 영주, 봉화, 예천, 영양, 의성,청송 6개 군(君)이 애워싸고 있는 형국이다. 남도에도 순천 인근 구례, 승주, 여천, 보성, 고흥을 (남도)동부6군 이라했다.
또 워매~다. 고흥은 보성군 벌교와 인접한 들머리 날머리 고흥목만 때면 완전히 섬인데 안동은...

나와 함께 고흥여행을 하기로 한 직장선배의 말도 연상된다.
"다 지리형국에서 사람들 성향과 역사가 나온다. 경상북도 지리를 봐라, 조선시대에는 전라도야 바다에 평야가 있어 굶어 죽지 않을 걱정없이 풍류문화예술을 즐겼다지만, 경북 산골을 봐라. 첩첩산중에 바다도 없고 서원이 왜 많겠나? 먹을 것이 없으니, 달리 안동이 정신문화의 수도이겠는가, 정신이라도 빠짝차려 공부해서 정신력이라도 길러 살았던 고장이 아닐까? 그래서 퇴계이황, 서애 류성룡 같은 인물도 안동에서 나온게 아니겠냐? "

무릎을 탁~! 친다. 모기다. 나는 편의점 데크에서 이글을 쓴다.
조선중기 베스트셀러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다음과 같은 묘사가 있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좌도는 경상도, 우도는 전라도다.

좌도(경상도)는 땅이 메마르고 백성이 가난하지만 검소히게 살면서 문학하는 선비가 많으며, 우도(전라도)는 땅이 기름지고 백성이 부유하지만 호사하기 좋아하며 게으르다(?)

《택리지》는 안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히였다.

이곳은 신이 알려준 복지(福地)다. 산이 평평하고 들이 넓어 명량하고 수려하며 모래가 희고 단단해서 기색이 완연히 한양같다.

강연장에 도착했다.
안동 지자체가 정신 바짝 차리고 만든 슬로건이 '정신문화의 수도' 란다. 나도 졸지않고 정신바짝 차리고 강연을 듣는다. 안동이 70일 동안 진짜 수도인 적이있었다. 고려 공민왕 때다. 홍건적에 쫓겨 공민왕이 몽진을 한곳이 안동이다.
또 워매~한다. 고흥 류씨의 시조 고려의 외교관 류청신이 공민왕 때는 없었나? 원나라하고 대원외교를 잘해 충렬왕이 장흥현에 소속되었던 고흥을 현(縣)으로 승격 시켜주게 한 인물이 류청신이다. 외교관이요 통역사였다.
5월에 순천에서 사은회를 했다. 은사님이 5월은 피천득 <오월>에 나오는 '청신(淸新) 의 계절이요 하시니, 그럼 고흥은 유자이니 '류청신' 이 생각나네요, 했던  그날의 기억...

세상에는 장동김씨만 있고 국가가 있는 줄을 모른다

그날 하니 KBS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도 연상된다. 그날에 안동김씨, 장동김씨(?)가 나온다. 안동김씨들은 억울하단다. 안동김씨가 나라를 말아먹었다는 말이 억울하단다. 정조이후 조선에 기운이 빠지고 일본에 나라를 내어주는 사단까지 난 것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던가? 세도정치 안동김씨, 풍양조씨 아니던가? 풍양? 고흥에 유자하면 풍양면 인데 고흥풍양 조씨? 고흥 풍양면에는 조씨는 없다. 경기도 남양주에 있다.

안동사람들은 먹고 살만한 먹거리가 없으니 일찍이 서울한양으로 많이 출가했나보다. 조선 한양의 종로 경복궁 인근 장위동, 지금 서울의 통의동ㆍ창성동ㆍ효자동 인근에서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던 권세가들이 안동 김씨였다. 세도정치 시절보다 200년 전에 안동땅을 떠난 조상들의 후손이란다. 북한 김일성이 밉다고 김일성이 전주 김씨라는 것과 똑 같다고 안동사람들은 항변한다. 한양 장위동에 살았던 장씨들은 '거는 장동 김가이더~' 란다. 그날과 오늘이 교차편집되어 스처간다. 허기사 나도 경주이씨다.

안동과 경주의 문화재 비교

경주랑 안동이랑 누가누가 유물이 많은 박물관인가? 안동이 331점, 경주가 343점이다.  안동사람들은  비교하려면 유물이 많은 경주정도 되어야지 북쪽의 영주랑 비교하면 얼굴 찡그린다고 한다.
부석사가 있는 영주가 선비의 고장인가? 안동이 선비의 고장인가? 지자체 끼리 서로 선비논쟁을 벌인 적도 있다고 한다. 서울 오면 영주사람이나 안동사람이나 우리 고향사람 아이가~ 한다는데...

조선시대 영남사람 퇴계이황과 호남사람 고봉 기대승이 벌이는 '사단칠정논쟁' 쯤 돼야지, 뭐~누가누가 더 선비답냐~ 그런 논쟁이였나? 고흥에 따르릉~따르릉~비켜나세요~자전거 목일신 동화작가의 누가누가 잠자나~ 하며 잠이나 자던지~ 하여간, 잠자지 않고 흥미롭게 안동을 들었다.

《듣는 안동》강연에는 노래가 강연 중간에 들린다. 안동역 바로옆에 큰 벚꽃나무에서 두가지가 이어져 자라 결이 서로 통하는 연리지(連理枝)가 있었다.
가수 진성에 '안동역에서' 🎵
한창 놀던 시절에 노래방에서 직장동료가 불렀던 노래 아니던가. 그때는 왜 안동역이 안동역에서로 오감이 교차하여 눈으로 들리지 않았을까? 조용필 노래에 '깊이'가 있듯 대중가요 가사에 참 좋은 인생철학과 삶의 지혜가 담긴 가사도 많다. 안동역에서의 실제 사랑을 모티브로한 노래라한다. 노래가사에 🎵  

안오는 건지~ 못오는건지~

첫눈이 오는 날에 사랑하는 연인이 서로 만나기로 했는데 못 만나니 그 이유가 궁금하다. KTX가 생긴이후로 안동역이 2개 라서 서로 다른 안동역으로 가버려 그럴 수 있었다, 는 시훈이형(작가) 해석에 ㅎ ㅎ ㅎ 웃음이 터저 나온다.

안동에서 조선초기 선비 남편 이응태가 죽은 후에 써놓은 400년전 사랑편지가 발견됐다. '원이엄마의 편지' 에 또 워매~ 한다.

오늘 강연장이 '노원'구 이고 내가 집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원이야~' 아내의 이름이 '노원' 이니 원이야 한다. 이응태? 나와같은 이씨네~ 아내 원이는 내가 죽으면 저런 애절한 편지를 쓸까?

한소절 한소절이 애절하다.  사람사는데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에 또 무릅을 탁! 친다. 이번엔 모기가 아니다. 글쓰는 편의점 데크에 모기향을 피우니 모기가 덜하다.
용비어천가 서사시로 시작하여 이양반 저양반이 쓴 양반선비들 시조만 보고 나는 자랐다. 오늘에 원이엄마의 조선 서정시 같은 편지를 보니 길들임이 무엇인지도 생각해 본다.

더 자세한 내용은 노시훈의 《듣는 안동》책을 읽거나 네이버에게 물어보면된다. 도산서원, 작가가 서원 중에 최고라는 병산서원, 여행용어인가 작가가 안동에 최애(最愛), 원픽(One-pick)이라는 봉정사(극락전)도 있다. 안동처럼 음식에 지역이름이 들어간 고장음식은 없다.  안동찜닭ㆍ안동간고등어ㆍ 안동식혜ㆍ안동소주 등 안동은 우리것에 대한 자긍심이 강한 고장이다.

후백제 견훤과 싸움에서 이기고 '(東)쪽이 평안(安)' 해졌다하여 ''安東 이라 왕건이 이름지어 줬다한다.《남도와 사랑에 빠지는 인문학기행 》 동부편을 쓰다보니 남도의 安東은 어디인가? 연상질문 해본다. 동쪽부터 여수ㆍ광양ㆍ순천ㆍ구례ㆍ보성ㆍ고흥, 남도의 안동은 어디인가?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에게 평안함을 주는 땅과 집이있다. 이중환은 그것을 살만한 마을을 택한다 하여 택리(擇里)라 하고 《택리지》를 썼다.
은퇴를 전후로 노후에 살만한 저마다의 安東을 擇理 한다. 안병욱님은 수필 <얼굴> 에서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저마다의 얼굴을 조각하며 산다했다. 나는 하회탈 중에 바보스러운 이매탈이 좋다. 김태길 수필집 <큰바보 작은 바보> 도 떠오른다.

김태길님은《삶이란 무엇인가; 그 의미와 보람》에서 인생은 저마다  그려가는 수채화 그림같은 예술작품이라 했다. 삶이란 예술작품을 만들어가는 여행이다. 저마다 편안함을 주는 곳, 安東으로 여행을 떠나자.

https://youtu.be/5MS-GpklkHs?si=XId51NMyw8CTa2zq

https://youtu.be/NvFE_Q_wBpw?si=W682kKGnr_ByeY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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