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남도여행

여수여행기 ; 여수의 사랑 = 쫀디기 사랑?

고흥돌문어 2025. 2. 7. 15:27

스물일곱 처녀는 아버지가 선생님으로 일하시는 여수를 갔다. 여수를 알고 한려수도 麗水의 사랑을 알았다.

오십이 넘은 나는 유부남이 되고 나서야 여수에 사랑을 알게 됐다.

이 나이 이 꼴로 나는 한강을 흉내 내려 여수로 간다. 늑깎이라도 되려나...
하여간, 그녀는 광주고속을 탔다. 나는 동방고속을 타고 여수에서 만나기로 했다(?)

조그마한(?) 파우치보다 훨씬 큰 백가방을 메고 그날에 처녀처럼 여수여행을 했다. 그리고 그날에 처녀처럼 여수여행 처녀작을 시리즈로 써본다.

여수역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쫙~달라붙는 이것!
앗~! 쫀디기다.

♡ 여수의 사랑 1 : 쫀디기? 쫀듸기?

여수 엑스포역에서

순천 자취방에서 할머니가 해주는 밥 먹고 학교 다닐 때 여수의 사랑을 가남했다. 순천에서 내가 학교 가는 날이면, 큰언니 순천 할매는 여수 막내동상 할매를 불러 자취방에서 오손도손 하루종일 얘기하며 심심함을 달랬다.

나이 들어 알고 보니 사랑♡이다.
할매들의 사랑은?
질곡의 시대를 고흥과 여수 순천에서 살아온 자매 간의 애뜻하고 애잔한 첫사랑이었다. 동생을 업어 키운 할매들 만의 사랑코드였다.《어린왕자》의 명대사처럼, 어른 누구나 아이때가 있었다, 그러나 아이 때를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그러나 촌할매들은 그날에 아이었다. 고흥에서 함께 자란 순천할매 큰언니와 여수할매 막내는 그날에 아이처럼 도란도란 날이 샐 때까지 이야기 꽃을 피웠다. 자매는 서로 거친 손을 맞잡고 흰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간지러운 등 긁어주는 까끌까끌한 할매손은 최고급 약손이요 수면제 였다.
사랑♡이였다.

동생을 업어키운 그시절 고흥사람들, 갑재민속전시관에서

내가 여수역에 내리자마자 처음으로 보았던 쫀득쫀득한 쌀로 만든 추억의  불량스러운(?) 식품~쫀득쫀득한 사랑이 담긴 쫀디기~쫀듸기 사랑이었나.
쫀듸기스러운 여수의 사랑은 또 무엇이 있을까?

♡ 여수의 사랑 2 : 여수 평화의 소녀상

윤도현 노래가 연상되는 여수의 사랑 Two(2)다.
그냥 사랑이지 왜 투(2)일까?
소녀상 앞에서 웃을 수도 없고 그렇다는 울수도 없고~진지한 표정이라도 지어본다. 서울에 있는 소녀상과 뭔가 다르다. 여수 소녀상은 사시사철 계절에 맞는 옷을 갈아 입는다. 나처럼 빵모자에 모자도 썼다. 그녀는 멋쟁이다. 恨을 멋으로 풀어낸 남도의 風流가 느껴진다. 서울 소녀상은 동지섣달 기나긴 겨울밤에 얼마나 추울까
여수의 사랑♡이다.

여수여객터미널 가는 길에서

코로나시즌도 지났는데 여수 소녀상은 마스크를 착용했다. 내가 방역수칙 위반인가, 소녀의 수줍은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걸까? 요리보고 저리 보니 뒷그림자 바닥에 할머니가 보인다.
앗! 그리운 여수소녀할매다.
여수의 사랑 투(2)다.

사진 찰깍~할땐 그땐 몰랐다. 바닥에 하이얀~나비가 있다. 나비반도 여수 닮은 나비다. 여수할매가 고흥순천할매 큰언니 보러 올때 입은 옷 하이얀 옷 같기도 하다.
자칭 민자까, 민경혜 동화작가가 쓴 《꽃과나비》라는 책이 여수에 부는 모진 겨울바람과 함께 스처간다. 작가가 위안부의 영혼이 돼 쓴 책이다. 동화를 써서 그런지 해맑은 미소의 작가에게 사인 받으러 갈 때 일도 스처간다.
꽃과 나비의 앞뒤를 바꿔 이렇게 말해 스타일 구겼던 그날...

추천해준《나비? 와 꽃?》
잘 읽었습니다^^


♡여수의 사랑 3: 이순신 장군?

전라좌수영 본영 진남관 가는길에

장군을 놓아두자~
이제 그만 놓아 드리자~
이순신 장군 영혼도 얼마나 피곤하시겠는가?
生卽死 死卽生으로 나라 구해 놓으니 후손들이 고문당한 형조가 있던 바로 그자리(現 세종문화회관) 그옆에 동상을 세워뒀으니...
등뒤에 선조王 영혼이 뻔히 내려다 보이는 자리에 동상 세워놓고, 그것도 모질라 연빙~하고 광화문에서 서로 싸우는 소리를 듣자니 얼마나 심신이 불편하고 피곤하시겠는가.
여기저기에 동상이 걸려 있으니 명절날 제삿밥을 어디로 먹으러 가야 하는지 장군이 헛갈릴 만도 하다. 아니면 여기저기 제삿밥 다 드시느라 영혼이 비만일 수도 있겠다.
한 번이라도 이순신 장군을 영웅사관의 영웅이 아닌 사람, 여수 송현마을에 살던 어머니와 아들, 보성사람 방 씨 부인(방수진)의 낭군, 장군이 아닌 낭군으로 사람과 사람 관점에서 우리는 보았던가

여수 송현마을, 이순신 어머니 살던 곳
어머니상, 고흥 고향마을에서

장군님을 이제 그만 놓아두자,
여수 진남관 이순신 장군 동상 옆에 아로 새겨진 장군을 도운 남도사람들의 이름이나 불러본다

광양사람 어영담
순천사람 권준
고흥사람 정걸, 송희립
그리고 남도의 수많은 수군과 격군들의 영혼....

여수는 지형 모양새가 나비를 닮았다, 윤도현 노래 나는 나비가 연상되는 나비만, 나비반도라고도 한다.

고흥반도는 꽃이다.
그날에 여수 할매 나비가 꽃을 찾아 순천으로 샜다. 나는 나비가 꽃을 찾아 날아가듯, 여수에서 순천과 벌교를 지나 옆길 고흥으로 새본다. 순천에서 나의 학창시절 그날에, 여수동상 할매가 고흥 큰언니를 찾아가듯 사랑을 찾아간다.

여수 이순신 광장에서 보았던 이순신을 도운 사람들, 오늘에 불러보는 그날에 함께한 항꾼에 정신과 충혼의 마음은 고흥 봉황산 기슭에 새겨있다. 충혼탑에 아로 새겨있다. 송수권 시인이 고향에 바친 헌시《사구시의 노래》<봉황산 위령탑 앞에서>에도 담겨있다.

고흥 봉황산에 올라

봉황산을 오르던 날 낙엽이 된 그 아까운 사람들의 영혼이 모진 바람에 스쳐간다. 남도할매들의 곡소리 한곡조 뽑아본다.

아이고~아이고~
이 아까운 사람들아~
아까운~

그날을 함께 항꾼에 한 장군과 수군들의 이름이 역사의 흔적으로 남아있다.

충혼록(錄)

시상에나~
그들의 후손들 이름과 태어난 곳 뿌리이름(탯줄터) 지명을 일일이 아로 새겨놓았다.

충혼 후손록(錄)

그리고 나는 순천사람 김한민 김독이 만든 이순신 장군 영화 시리즈 첫 작품《명량》에 이 장면이 스쳐갔다.

박치호 화가ㆍ김정운 교수ㆍ김한인 감독, 여수호텔에서

거북선, 판옥선 밑에서 노를 저었던 남도 역사의 품격, 격군(格君)들의 대화가 연상됐다.

후손 아그들이 우리가 이 개고상~하고 나라 지킨 거 알랑가 몰것네~
암~(지들은 배왔응께) 알아주것제~
몰라주믄 싸가지 없는 호로자석들 이제~
안 그렁가 잉...

순천사람 감독은 順天의 마음을 거북선 갓발의 <順> 으로 살쩨기에 살포시 보여줬다.
영화 엔딩신에 장군의 아들이 승리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天행이라 했다. 이순신에게서 順天을 보았다. 그리고 장군은 천행(天幸)을 백성이라 했다. 순천과 여수할매도 나에게 느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하내들은 노저슨 격군들이었다~장군이 똥장군 격군들을 이삔 간네 한테 애워줬다~각시 삼아줬다~그렇게 말씀하셨다.
영화 《명량》에서 진구할배는 왜 말 못하는 각시(이정현 粉)를 뒤로 하고 장군중에 장군, 똥장군에 포탄을 싣고 왜적선으로 돌진 하는가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에 일본이 우리나라 일수도 있다. 일본여행은 국내여행 일 수도 있다. 일본 료칸숙박은 국내숙박이 되었을 것이다.
'나' 가 아닌 '우리' 라는 말로 이어진, 한국인 특유의 울력의 정신과 남도의 항꾼에 정신의 나눔의 미학도 보여줬다. 이 명대사(?)로 살쩨기 비췄다.

한번들 잡숴보소~
좝사보소~

사람사랑 정신과 함께하는 항꾼에 정신에서 비롯된《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은 오롯이 전라도 음식으로 이어진다. 촌스러움의 미학은 나눔의 미학이다.
여수 아지매가 막 잡은 병어(덕자)를 큰 식칼로 듬성듬성 썰어내 덤벙덤벙 덤벙그릇에 싸목싸목 담는다.
병어(덕전) 속살이 여수역에서 보았던 쫀득이~살색의 딱 그 색이다. 쫀득하고 달짝찌근 할까?

여수의 시랑♡은 쫀디기 사랑인가
여수에서 우연히 만난 첫사랑인가

다음 글에 계속~

여수, 한가람소주코너 에서
여수역에서
여수 진남관 인근 이순신 광장에서
송수권 고흥 <사구시의 노래> 中
윤도현, 나는 나비 ㆍ 여수는 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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