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국가세력 차범근?
왕년에~뭐 안해본 사람 어디있겠냐 마는, 미친 개같은 王과 왕년(?)이 계헤엄 치는 계엄을 선포했다.
세기의 세계적 한국축구선수 차범근 감독이 체포자 명단에 들어갔다.

빈국가세력 체포자 리스트(데스노트)에 차감독이 들어갔다.

아내가 있는 고흥에서 차감독이 자주 머물러 계엄군이 체포를 못한 것일까?
스포츠계를 연예계로 분류해 작성했으니, 나도 왕년에~한가닥한 왕년(?)이라고 본명이 왕 씨 '왕지현' 인 전지현도 놀란다.

♤ 박지기왕 김일
거금도에 박치기왕 김일 닮은 우리들의 마빡~아들 차두리, 두리가 또 사고를 첬나?

아니다, 2024가 아닌 2014년, 10년 전 일이다.
우리들의 마빡~대그박이라도 고흥서는 말하는 김일선수인가~ 장군인가, 아니면 장군님인가.
고흥서는 이순신 장군 동상보다도 그 위세가 우람하다.
남도 말로 형(兄) 성~이라 길게 발음하고, 거금도 동생(동상~)이 김일형님을 김일성님으로 부르니~띄어쓰기라도 잘못 할라치면, 김일성님(?)이다. 김일 성님은 종북세력이라 하여 체포자명단에 없나?
하여간,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체포자 명단에 없다.

♤ 류제두 권투선수
그럼, 산 사람에게 전화해 본다.
그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배고픔을 달래주는 호두나무를 심은 고흥조상의 후손이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몽고에서 호두나무를 가져온 고흥 류 씨 류청신 중시조와 조선시대 최고의 이야기꾼 <어우야담> 류몽인, 그리고 류관순 열사와 종친인 사람이다. 류몽인이 살던 고흥읍 호산(호동)리에는 글(文)을 아는 선비의 고장 두원면에서 시집온 며느리들이 많이 살았다.

우리들의 돌(독~) 주먹 류제두 선수, 두원아재다.
그날에 그는 고흥에는 권투체육관이 없어 서울로 상경했다.
척박한 시절, 먹고 살려고 부산으로 서울로 어머니가 싸주는 보따리에 양은 냄비와 숟가락만 싸질머메고 부산으로 서울로 갔던 남도 사람들~호남고속도로 여산과 천안휴게소에서 배고픔을 달래주는 호두과자였다.

高興 이름의 류청신 시조가 가져온 호두나무를 처음 심었던 천안 광덕사가 있는 천안삼거리 휴게소에서 호두과자를 먹던 시절이었다.
눈물 젖은 빵~호도였다.
샌드위치를 먹는 오늘에 우리가 언제 그랬나는 듯이 까먹은 샌드백이었다. 제두아재가 출연한 영화처럼 눈물 젖은 샌드백이었다.
샌드배은 간절한 꿈이었다.
영화 주연배우로 출연?
그는 순천사람 박노식 배우와 함께 남도가 낳은 연예계 인물, 큰바위얼굴 이었던가?

제두아재에게 전화해 본다.
고흥사람들은 돌을 독~이라 길게 발음하고 고향 한참선배를 아재라 한다. 그네들 삼성장군(?)들의 말처럼 호칭파괴라나 뭐라나~눈속임하는 감시와 처벌의 말로 류선수나 류 프로님~그렇게 요상하게도 부르지 않는다.
이름을 부른다.
남도사람들은 제두행님이나 제두아재, 제두 씨~아재라 그렇게 부른다.
제두아재는 별 탈 없습니까?
그렇게 내가 물어보니, 서울서 체육관 도장을 운영하는 아재가 이렇게 답한다.
나야 말이시~
고향 사람들한테 욕은 먹고 있지만 별 탈 없이 잘 지내네~
자네는 잘 지낸가?
욕을 먹다니 웬 말인가?

척박한 시절에 아재 어머니는 읍에서 고무신 도둑들 사는 선비가 사는 곳이라 놀렸던 고흥 두원면 신송리 외신마을에서 서울로 간다.

그 시절에는 호남사람들이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하며 박정희를 대선에서 김대중 보다 많이 찍어줬다.
하얀 한복을 입고 얼굴에는 동동 구루무 칠하고 머리에는 들기름 바르고 하얀 고무신 꼬까신 신고 두원 어머니는 서울 청와대로 갔다.
고흥 소록도에 자주 내려왔던 육영수 여사도 반겨준다.
그날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전라도 꾸석돔에서 서울 임금님 사는 데가 어디다고~
거기까정 가봤으니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어머니를 생각해서 아재는 박근혜 대통령 후보시절 유세지원 요청을 뿌리치지 못했다. 대선 때 유세차에서~고흥 사람들 말로 유세(?)를 떤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류제두는 고흥 사람들에게 김일선수와 함께 큰 자랑거리다.
빨간 유세차를 탄 류제두 아재를 본 고흥사람들의 마음은 이순신 장군이 일본 배를 타고 나타난 격이었다고 한다.
류제두 아재도 사정이 있었고 고흥사람들도 다~사정이 있다.

다만, 극우유투버들과 보수언론이 돈욕심도 없고 순진한 운동선수 제두아재의 義를 의리로 각색하여 정치에 이용하는 것이 못돼 먹을 뿐이다. 제두아재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고 한다.

모반을 하고 형제들 쏵~다 잡아 죽이고 義를 고무신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계유정란의 恨과 義가 조선대륙 반도 끝 두원(금성마을)에 여산 송 씨 종갓집에 충효록(忠孝錄)과 세조에게 보낸 상소문이 있다는 사실.
세종대왕이 그리도 귀하디 귀한 장손 단종의 비, 명문가 집안에서 고르고 골라 점지한 妃가 여산 송 씨다. 그 여산 송 씨의 恨과 義를 역사의 흔적과 땅의 기운에 있는지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하려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고흥 두원면 학림마을生 송수권 시인이다.

그리고 송 시인은 그 땅과 길의 흔적과 기(氣)을 기행으로 남겼다.

제두아재에게 고향 두원에 제두아재 주먹맹키로, 벌교 주먹 맹키로 주먹구구 역사가 되버린 義의 역사가 있다고...
혹시 아시냐고 물어보니, 이렇게 답한다.
ㅎ ㅎ ㅎ
금메말시, 나는 권투만 했고 지금도 권투도장하며 꿘투만 해서 잘 몰것네~
하여간, 왜 차감독이 체포자 명단에 들어간 것일까?
그들이 말하는 반국가세력들? 반국가세력이 어때서?
예로부터 고흥 땅은 반국가세력, 부족들이 살던 괴이하다는 고이부곡(府曲)이었다.
먹거리가 풍부하고 풍류와 예술과 평화를 사랑했던 마한의 공동체 사회였다. 세금만 착취해 가는 국가는 필요 없는 곳이었다.
그렇게 뿌리내림한 반국가세력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 차감독이 축구교실을 차려서 그를 체포하려 했던 것일까?

그는 어린이들에게 꿈을 키워주는 고흥의 큰바위얼굴이다.
순천사람 아내가 살고 있는 고흥에 자주 들락날락하는 고흥사람 다된 사람이다. 그 사람을 도대체 왜 체포하려 했던 것일까
♤ 프리미어리그 박지성
혹여나, 고흥의 아들, 고흥에 <박지성공설운동장>이 있는 박지성은 체포자 명단에 들어가지 않았나 검색해 본다.
계엄군 탱크만 있을 뿐 팔영산 산소탱크는 없다.
다행이다.
축구장을 여기저기 누비고 다니는 박지성을 폐활량이 뛰어나 흔히들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산소탱크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내가 직접 박지성이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곳을 가보니 점암면 팔영산과 두원면 운암산 큰 산 두 개의 정기를 받았다. 그가 살았던 점암면 신안리 용강마을은 점암면과 두원면 인접지역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흥이 낳은 스포츠계 명단을 적어본다.
☆ 머리(박치기) : 김일, 노지심
☆ 손(배구) : 갈색 폭격기 신진식, 류중탁
☆ 주먹(권투) : 류제두, 백인철
☆ 발(축구) : 박지성, 2002 월드컵 베트맨 김태영

어~차범근도 고흥에서 태어난 게 아닌데 고흥사람이라 말하고 나는 왜 빼냐고 짱둥어 맹키로 방방 뛰며 불쑥~튀어나오는 이가 있다.
점암면 박지성, 녹동항 김태영과 함께 2002 월드컵 스타...??
이천수다.

아내가 고흥사람이다.
고흥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각시가 소록도 금방에 녹동이란다'
이천수도 소록도를 찾은 육영수 여사의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남도의 소월 최소월 첫사랑 쌍을 찾아 쌍충사 <녹동풍경>을 그린 나혜석 화가의 마음이었을까?
2024년에 송영길 고흥사람이 이재명 대표에게 내준 지역구 인천계양구에서, 이천수는 원희룡과 함께 유세차에 올라 타 유세(?)를 떨었다.
이천수는 요즘 고흥 처가에 자주 가는지 모르겠다.
체포자 명단에 없다.
♤ 김일을 노래한 송수권 시 ; 우리들의 마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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