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진명여고에 입학했다
아빠 창피하다고 사진은 올리지 말라고 말해도 몰래 올린다

나의 아버지도 이런 맘이었을까
아버지도 나도 딸아이도 십이간지가 세 번 돌아 36년 터울 쥐띠다. 내가 딸아이를 서울에서 낳은 나이에 아버지
도 나를 남도에서 낳았다.
딸아이가 초ㆍ중ㆍ고를 진학할 때, 나는 항상...
아~울 아버지도 이때쯤 이 나이였구나~
벌써 내가 아버지 나이가 되었네~
그렇게 세월의 흐름을 간지럽게도 십이간지로 느낀다
순천터미널에서 벌교 가는 길에 동방교통 차창 너머로 보이는 순천고등학교 정문을 볼 때 아버지도 오늘의 나와 같은 기분이었을까

입학식날 가지 못해 딸아이가 다니는 고등학교에 가봤다
사춘기 그때는 왜 그럴까?
부모가 학교에 홀로 오면 창피했다.
아이들 볼까 봐 숨는다
딸아이 몰래 혼자 갔다
순천 그날 이후로 나는 하얀 백발에 한복을 입으신 고흥 할머니 학교에 올까 봐 김치 도시락은 꼭 챙겨 학교를 갔다.
순천 자취방 고흥할머니는 정문 경비실에 도시락을 놓고 갔다. 이재혁 학생 정문에 와서 도시락 벤또 가져가라는 교내방송 엠프가 아직도 귓가를 맴돈다.
할머니는 재혁을 재학이라 발음하니 동창생 재학이 녀석이 고개를 갸우뚱 했던 기억이다. 나는 재학이 재혁인 걸로 언능 알아듣고 교문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날에 계란후라이 도시락을 연상케 하는 학생이름이 진명여고 정문 경비실에 적혀있다.
그날에 시골 부모님도 맞벌이요~요즘 도시 부모들도 맞벌이가 많다. 부모님 대신 할머니가 두고 갔을까. 누군가 두고 간 종이백이 교문에 있다. 그날에 밥 식을까봐 쌓은 할머니 손수건은 오늘에 종이 백으로 변했다. 햄소시지랑 김밥이랑 보온도시락이랑 기차는 순천에서 처음 봤다

오늘 서울에 벽시계는 그날 순천에 할머니 까치밥시계다.
아버지의 어무니 할머니~손자 학교 갈 때 밥차릴 시간이랑 손자 학교에서 올 때 저녁할 시간 보시라고 아버지가 입학식날 시계를 샀다.
순천터미널 근처 시계방에서 산 숫자가 큼직막한 시계를 사주셨다. 할머니 시계는 오늘도 할머니가 살아계신 듯 남도 까치소리와 함께 째깍째깍~싸목싸목 잘도 간다.
나의 고교 시절에 이 시계는 이천(千)번을 넘게 돌았다.
진명여고 교목이 감나무였다
시골집에 할머니가 심어 놓은 감나무에 因과 연(緣), 인연이었다

순천고 교목은 무엇이었나~감이 오질 않는다

학교에는 슬로건이라는 것이 있다
순천고는 '오늘도 세계를 주름잡기 위(爲)하여' 였다
오늘에는 그 세계는 어떤 세계였나? 물음표도 던져본다.

진명여고는 'The first & The best' 다. '최초를 넘어 최고로'다.
진명 슬로건은 예전에 내가 다니던 회사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만남과 인연의 오묘함이다.

순고정문 건너편 민중서림에서 산 성문기본영어 에도 나오는 단어를 소환해 본다

최초를 넘어 최고로?
'The best over the first' 오버(over)가 맞는 것이 아닌가?
진명 슬로건은 예전에 내가 다니던 회사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만남과 인연의 오묘함이다.

그날에 순천고 정문 길 건너 민중서림은 매운짬봉과 고추짜장이 맛있는 중국집으로 변했다.
일식집으로 변하지 않는 것은, <명량>영화 이순신 장군 말씀따나 천행(天幸)이다
그날에 배부른 돼지보다 낫다는 소크라테스의 뇌고픔은 오늘은 돼지의 배고픔으로 변한 걸까. 저녁때쯤 순천고 건너편 민중서림 자리에 들어선 중국집에 그날에 갔다

오늘은 진명 교정에 설립자 동상을 본다
의석(宜石)과 우석(友石) 이름에 인연도 오묘하다
진명여고는 의석 엄준원 선생이 설립했고 순천고는 우석 김종익 선생이 설립했다.
이 씨 성(姓)을 가진 나는, 지금도 자주 연락하는 고교시절 짝꿍 성씨가 엄 씨다. 이 씨와 엄 씨의 인연이다. 이 씨 고종의 마지막 왕비가 엄 씨다.
순천고 시절 마지막 짝꿍도 엄 씨다. 고종의 마지막 짝이 엄비 순헌황귀비다.

순헌황귀비는 숙명여학교를 설립했고, 남동생 엄준원 선생은 진명여고를 설립했다. 선생의 7촌 조카 엄주익 선생은 진명여고와 오누이 학교인 양정고를 목동에 1905년에 세웠다.
양정고는 순천 저전동에서 태어난 남승룡 마라톤 선수를 스카우트해 손기정 선수와 함께 육상부를 만들었고 베를린에서 우승하던 1936년 병자년(丙子年) 쥐띠해에 나의 아버지가 태어났다. 손기정과 남승룡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시상대에 올랐다. 의령 남씨 남승룡은 나의 고교친구 종친이기도 하다.
연(緣)이란 이런것인가

명리학적으로 김종익 선생이 龍자가 붙는 해룡에서 태어난 것은 우연이 아닐게다.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요~필연은 불교에서 인연이라 말한다.
개천에서 용(龍)을 키우던 학교를 설립한 김종익 선생이 바다(海)를 머금고 태어난 아이들을 용(龍)으로 키우려고 순천고를 설립했다면 나의 구라(?)인가
도올 김용옥 선생은 불교에서 기원한 구라가 성리학보다 한차원 위라고 말한다
2학년, 3학년 담임이자 순천고 교장까지 역임한 윤정근 구라(?)선생님이 순천해룡 生이었다. 사은회때 또 막걸리 드셨나~해롱해롱 하시며 김종익 ~김종익~해룡하시더니 선생도 선생님도 해룡生이었다.
학창시절 교정에서 막걸리 냄새를 많이 맡아서일까~ 나는 막걸리 대학을 갔다.
순천해룡生 김종익 선생 동상은 순천 죽도봉에 있다

순천 갈 날에 우석 선생에게 고맙다고 인사 한번 하고 와야겠다
진명 의석 선생 한테는 딸아이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했다
학교에는 교훈이라는 게 있다
진명여고 교훈은 진실, 협동, 창의다.

남도에 순천고 교훈은 오늘에 봐도 심오하다.

그 교훈은 지금의 나에겐 이것으로 변했다
▪︎ 심미(深美)적 감성
▪︎ 예리(銳理)한 통찰
▪︎ 진솔(眞率)한 행동
인생 전반에는 이성의 눈으로 살아봤으면, 인생후반은 직관의 눈으로 살아보자는 심사다.
글쓰기는 통찰력이라고 40회인 나보다 12간지 먼저 돈 28회 쥐띠 고교 선배의 말도 기억난다
순고 교훈에는 진명 교훈에 있는 협동이 없다. 함께하는 항꾼에라는 협동이 없다.
공동체사회 풍습이 남아있는 남도에선 삶이 협동 그 자체이니 교훈에 넣어 무엇하겠는가. 교훈은 가르쳐 지향하는 것이므로 넣지 않았을 것이다.
진솔한 행동은 진실이요, 심미적 감성과 예리한 통찰은 창의를 말함이니, 아빠 고교와 딸아이 고교 교훈의 통(通)함이다.
그리고 순천고 교정에는 내가 다닐 땐 못 봤던 이런 게 생겨났다
품성인(品性人)이란 말 참 좋다
회사에서 사과상자(品) 선물처럼 꺼내 먹어도 좋을 말이다

순천고에는 학교를 상징하는 동물이 있다.
해태상이 아니라 사자상이었다.

해태야구를 응원하던 시절에 해태인 줄 알았더니 사자였다. 사자후(喉)를 토하다는 말에 사자는 부처님이었다.
남도에는 동네마다 사자상이 유난히 많다
사자는 교정으로 옮겨졌고, 몸에 황금칠을 하더니 요즘엔 사자가 머리염색도 했다



진명여고에는 빛을 비추는 가로등 불빛 같은 둥근 조형물이 정문에 놓여있다.

세계를 주름잡는 세계지구본 같기도 하고 사자후 부처님 목탁 같기도 하고 아버지랑 소몰고 소 길들일 적 이리야~워워~하며 워낭소리 들으며 뒤에서 보았던 쇠불알 같기도 하다.

조형물이 고흥 용바위에 드레곤볼~용환(龍丸)을 닮았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옛말이 됐다?
아니다.
안양천, 양재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다.
그날에 순천에는 동천과 옥천 이수(二水)가 순천만으로 흘렀다. 오늘 서울에는 안양천과 양재천이 한강으로 흐른다.

야간 자율학습하고 순천고 정문을 나오며 보았던 별들이 스쳐간다. 진명여고 교문을 나오며 봤던 다시 이것이 다시 머리에서 오버랩인가~ 교차편집된다

요즘은 학교에서 급식을 하니 도시락은 아닐 테고 무엇일까?
딸아이가 나를 닮아 자꾸 무엇을 까먹고 흘리고 다닌다. 혹시 딸아이 집에 흘리고 간 무엇이 아닐까 이름을 봤더니, 이니라 다행이다.
아니나 다를까, 어제는 필통을 집에 흘리고 갔다고 아내가 말한다
교정을 나와 동사무소로 가 사전투표를 했다.
사전투표율이 역대 최대다.
남도에 투표율이 최대다.
노인들이 많이 산다지만 문지방 넘을 힘만 있으면 투표 할 기세다.
남도의 사자후다

아버지가 어떤 선거포스터를 보고 나를 광주가 아닌 순천으로 고등학교를 보냈다.
순천고 2회 졸업생이요~세계를 발로 주름잡으려 영국으로 간 박지성이 태어난 고흥 점암면 신안리 生이었다
동창회에서 아버지 말씀을 전했더니, 오마~그러냐며 내손을 꼭~잡아 주었다
이대순 前장관은 2회 졸업생, 나는 40회이니 38살 차이고, 아버지는 나를 36살에 낳았으니 그는 아버지보다 두세살 위다.

그때는 민주정의당이 어떤 당인지도 오지 촌에 아버지도 나도 몰랐다
그냥 순천고~순고 나온 것만 아버지는 보였나 보다
나이 들어 나의 깨달음은 순천에 순천고, 순천여고 만 있는게 아니었다. 매산고, 효천고, 금당고, 강남여고, 순천여상, 순천공고가 나이들어 감에 따라 새롭고 드높게 다가온다. 인생 전반전 공부로 힘 주고 살았으면 힘 빼도 좋을 일이다. 골프에서 힘을 빼면 공이 더 멀리 나가는 것과 같은 우주의 진리다.
순천은 산수가 좋아 소강남(小江南)으로도 불렀다
'서남권 개발과 고흥지역 발전'이 그날에도 선명하다.
그날에 서남권 개발은 고흥만과 해창만의 간척사업이었다. 그것은 먼 미래를 보지 못한 개발이었다. 당장에 달콤한 보상~돈의 유혹에 고흥만과 해창만에 바글 하던 바지락과 꼬막이 이제는 바닷물이 돌지 않아 간데없다.
농토에서 유휴지로 변해버렸다. 고흥읍 주월산 정상에서 고흥만으로~포두면 마복산 정상에서 해창만으로 패러글라이딩을 한다지만 그날의 개발은 먼 미래를 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패러글라이딩을 고흥에서 즐기던 연예인도 사고로 사망했다

사전투표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진명 교정에서 보았던 이것이 떠오른다.
계몽의 역습인가?
계몽(啓蒙)과 계명(啓明)이다.

新용산의 시대가 기다려진다
S순천ㆍK고흥&광양ㆍY여수 SKY여행시대의 꿈을 꾼다.
고흥은 고려 Korea에 K코리아요~광양은 징기스 가한의 K칸이다
광양사람들이 광양을 간양이라 발음하는 이유는 우슷개가 아니었다.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였다
남도에 가한~큰바위얼굴이 없다.
오늘도 동천과 옥천은 모레를 쌓고 길을 S자로 닭아 흐른다 S순천만으로 이수(二水)는 감돌아 흐른다.
三山은 높이 솟았고 二水 감돌아 흐르는 곳~그렇게 순천고 교가는 시작한다

진덕계명(進德啓明)처럼 남도의 빛으로 겨레와 온누리를 밝게 비추어야 한다
오늘에 계몽은 정반합 변증법으로 계명(啓明)이요~계명(啓明)은 진명(進明)이다.
그날에 이순신 장군을 王보다 숭상했던 남도 조상들은 명(明)나라 수군과 함께 진(進)격했다.

(진)짜 대한민국을 밝게 비출 운명과 명(明)이 서서히 온누리에 오고 있음이다.

새시대 세기의 선구자 되어 새문화 건설하리니~
새문화 건설할 글로벌한 K-콘텐츠는 전통이 깃든 남도에 있었다.
삼천만은 오천만으로 변해도 삼천리 금수강산은 영원했다
進明은 眞明이다 !
진짜 대한민국이 오면 참되게 살 일이다 !
더 큰사랑으로 안아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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