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고구마 심는 날》를 읽고 고구마 먹는 날이다.
남도産 고구마를 먹고 개미진 책을 읽으니 개미가 솔찬히 솔찬했다. 사진도 의미가 있어야 개미진 맛이 난다. 밤나무골 여수율촌 사람이 소개해준 고구마에 율촌사람이 쓴 책 《전라도 말의 뿌리》는 왼편에 두었다.
가을 알밤에 밤톨이 없어 아쉽다. 앞머리를 밤톨처럼 둥글게 짧게 깎은 날이다.
주말에 고교동창들과 산행 갔을 때 무담시롱 했던 그 시절 말잔치가 생각난다.
무시는 무~담시롱~
감재는 고구마~담시롱~
그럼 하지감재, 북감재는?
낙안生 동창과 함께 산을 내려왔다. 밭에 무를 보고 무우인지 무인지 무시인지~무시 는 무담시롱이었다. 감재인지 감자인지 고구마인지, 요맘때 햇고구마에 썰어먹던 통무시도 생각나고 무담시롱 이 책도 생각났다.
장흥은 밭에서 풀김매는 아짐, 아재들도 나름 작가(?)라더니, 노벨문학상 한강의 뿌리 장흥生 이며《순천의 인물 100인》외 다수의 책을 펴내신 장병호 선생님이 또 책을 냈다.
나의 고교1학년 국어선생님 이셨다. 자취방에서 할머니가 싸주신 계란후라이(할머니 말로는 닭알 부처리?)를 먹고 졸리는 시간 국어시간....
그때마다 여지없이 지나가는 '계란 사세요 계란~' 계란장사가 나를 깨운다. 그리고 선생님은 저 노므 계란장사 영감탱이~그러실 줄 알았더니 님의 침묵을 읽으시다 침묵하신다. 그리고 계란장사가 지나간 후 이렇게 말씀하신다.
닭이 우리 사람에게 얼마나 이로운 가축인 줄 아니?
계란은 또 세월이 지나도 값이 오르지도 않고 배고픔을 달래주던 얼마나 고마운 먹거리인 줄 아니?
계란장사도 먹고 살아야지...
자 다음페이지...
그렇게 말씀했던 선생님 수필집이 기다려졌다. 음악계에 서태지가 출현하기 전에 문학계에 서태지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킨 《무진기행》
김승옥 광양ㆍ순천사람과 얽힌 뒷이야도《고구마 심는 날》에 많이 담겨있어 흥미롭다. 서울을 뒤흔든 그의 감수성과 말의 뿌리는 어디로 부터왔을까.
주말 산행하는 그날, 나는 무시를 보고 무담시롱 그 고구마책이 떠오르고 고구마 생각에 옆에 가는 낙안生 동창에게 나는 이렇게 물어봤다.
행님, 감재라고 아요?
그러자 동창이 이렇게 맞장구 쳐준다.
니는 하지감재라고 아냐?
그래서 나는 또 이렇게 되물었다.
그람, 행님은 북감재라고 아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북감재? 북치는 감자? 북으로 부터 온 감자? 북매는 감자?
하지감자를 남도에서는 왜 북감자, 북감재라 불리는지도 궁금했다.
아니 그보다, 오지라 불리는 고흥에서도 꾸석섬, 나만 '감재'라 그렇게 부른 줄 알았다. 그 시절 촌동네 가정교사(?) 할매 엄니는 고구마를 감재라, 감자를 하지감재, 북감재라 불렀다.
나는 고구마라는 말을 중학교 역사시간에 처음 들었다. 영조 때 '조엄'이라는 통신사가 일본으로부터 조선에 고구마 들여왔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감자를 감재가 한가브다 했다. 그때 고구마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헛갈림이 아직도 새록새록하다.
고구마? 감재? 감자? 하지감재? 북감재?
그 후로 나는 커가며 감재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아니 일부러 쓰지 않은 적도 있었다. 나만 우리 시골동네만 '감재' 라 그런 줄 알았다. 순천낙안에서도 감재라 했다는 걸 이제사 알았다.
그리고 네이버에 '하지감자' '북감자' 그렇게 검색하다 나를 흥분, 흥분 시키는 책을 발견했다. <인연>의 피천득은 좋은 글은 사람을 흥분 시키는 글이라 했다.
퇴근길에 광화문 교보문고로 갔다. 저자가 여수율촌 밤나무골生 위평량이다. 국어교사로 퇴직한 고교선배였다. 단톡방에 연락처를 문의하니 친절하게도 알려준다. 문자를 남겼다. 저녁에 고맙게도 전화가 왔다. 나는 짬짬이《남도와 사랑에 빠지는 인문학 기행》을 쓰며 전라도 말은 한길 사람 속을 모른다는...
그 사람 속의 오밀조밀한 참 다양하고 웅숭깊은 말이 많네~
그 안에 조상과 부모네의 생활상과 역사와 뿌리와 영혼이 담겼네~
그런 생각들이 내 안에 고구마처럼 뿌리처럼 자리 잡았다. 그런 참에 《 전라도 말의 뿌리》라는 책을 발견하고, '솔찮이' 라는 말의 어원을 찾는 대목에서 나는 조정례《태백산맥》이 연상됐다.
염상구가 외서댁과 소화를 처음 보고 미모에 반해 했던 그 말이 떠올랐다.
솔찬허시~
아따~솔찬허시
사랑하는 이를 지리산에 보내고 벌교에 남겨진 그 미모의 여인들. 솔찬하다는 말이 그냥 미모가 이쁘다는 말 쯤이었을까?
'솔찬하다' 라는 말에도 남도의 솔찬한 역사와 영혼이 담겼다. 위평량 지은이는 이 말의 어원을 찾고 무슨 특허품이나 발견한 것 마냥 솔찮이 기뻤다고 한다. 솔찮이는 '수월치 않다'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생각 해보니 남도의 삶이 그랬다.
솔찬했다.
삶이 솔찬했다.
조정에서 세금만 걷어가는 밤나무를 이봉징 순천부사의 도움으로 밤나무를 모두 베어버린 수월치 않았던 지은이의 탯줄터 밤나무골 역사가 솔찬했다. 백성들의 그 애환도 수월치 않았다. 솔찮이는 어찌 보면, 척박한 땅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는 고구마 감재처럼 질곡의 역사를 이겨낸 사람들의 영혼의 말처럼 느껴진다.
지은이 율촌사람은 허벌나게 허천나게에도 다 어원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지은이의 이 말에 솔찬한 감동과 여운이 감돌았다.
부모님들이 썼던 전라도 말의 어원(원형)을 찾아 남도 방방곡곡을 다녔다
전라도 말지도를 그렸다. 무우가 어원인줄 알았더니 무담시롱 무시당했던 무시가 어원이요 원형이다. 할머니가 쓰던 '닭알' 이 암시랑토 안허고 좋은데, 닭의 알이니 닭알인데 왜 구지 한자표기로 계란이라고 하지~ 그랬던 그날도 생각난다.
그날에 나는 닭알에 계란장사가 지나가는 순천교정에서《고구마 심는 날》선생님이 다음장을 넘기라는 국어교과서 이말이 떠올랐다.
자아상은 언어상이다
언어상이 모이면 자아상이 되고 자아상이 모이면 사회상이 된다
전라도 이외에 팔도의 고향말의 어원을 찾아 써낸 위평량 《팔도 말모이》라는 책도 있다. 한국인 누구에게나 고향말이 있다. 서울生은 서울말이 고향말이다.
질곡의 역사와 척박한 시대에 급행을 타고 일렬종대로 가는 세대는 지났다. 표준말은 표준일 따름이다.
그렇다.
다양성이다.
고향(존재)상실의 시대, 나를 찾는 나다움을 찾으려며 사라져가는 고향말 부터 찾아야겠다.
나의 자아상, 나(我)를 찾으려면 내안에 미토콘드리아처럼 꿈틀대고 있는, 내가 어려서 쓰던 뿌리 깊은 말부터 써야겠다.
천경자 화백과 잘알고 지내던 배우 윤여정은 이런 말을 했다.
그렇게 세련된 옷감에 글감에 그림에 그렇게 화려한 전라도 말이 참 어울리는 사람
흔이들 세련된 여성이라 말하고 그녀의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연구하는 세련된 서울여성들도 있다는데...천경자 화백은 왜 끝까지 고향말을 잊지 않고 썼을가? 고흥말을 참 구수하고 개미지게 썼다는데...
개미진은 그냥 재미있는 정도로 알았다. 왜 맛갈진도 아닌 개미진 남도음식여행이라 하는지 궁금했다. 고구마 심듯 책을 읽고 감재 캐듯 개미진 남도여행을 떠나고 싶다.
광양순천사람 황풍년 作《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에 美學은 味學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저자는 전라도 말의 웅숭깊음은 다양성이라 했다.
개미는 처음에는 맛이 없다.
개미는 알고 보면 깊다.
개미는 웅숭깊다.
저자의 말대로 고만고만한 집안에 뼈대는 앝지만
뿌리가 깊다. <뿌리 깊은 나무> 한창기 선생이 자주 하셨다는 그 말씀도 개미지다.
" 우리 고향 음식과 전통과 영혼과 말을 언젠가는 세계가 알아주는 날이 올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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