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 단톡방에 누군가 좋은(?) 글을 올렸다. 본인이 직접 보고 쓴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쓴 거 베껴서 옮긴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본인이 좋으니 다른 사람도 보라고 옮긴 것은 참 좋은 일이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옮기는 것도 자기가 제 3자에게 말(語) 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돌문어 생각이다.
조선일보에는 <광수생각>이 있고 고흥신문에는 <고흥돌문어 생각> 이 있다. 더불어, 촌스럽지만 콩심는데 콩나는 豆原땅에 탯줄터가 있고 豆原 탯말을 쓰는, 거짓말을 못하는 일자머리 <이야기대장 짱뚱이>도 있다. 어매가 거짓말하면 천벌을 받는다고 했다.

짱뚱이 처럼 <작고 못생긴 사과 🍎 >라는 '좋은 글'이 단톡방에 올라왔다. 글에는 노점상을 하며 사과를 파는 행상이 나온다. 길가는 보행자가 그 행상으로부터 좋은 사과 놔두고 흠집 있는 사과를 일부러 골랐다는 것이다. 노점상이 불쌍(짠~) 하기도 하고 내가 흠집 있는 사과를 사주지 않으면 누가 사주겠는가~그런 착한 마음이었을게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역시나 <배려> 배려라는 말이 고구마 순처럼 따라붙는다. 그리고 읽는 이는 남을 배려하고 아름다운 글이라 극찬을 하였다. 그 배려하는 마음은 참 좋은 일이다.

하지만, 또기동네 돌아이처럼, 돌아이를 또라이로 만 보고 돌겠네 정말~그러지만 말고...
어른들도 易으로 거꾸로 한번 만이라도 생각해 보자. 행상은 사과도 자기 마을 모퉁이에서 팔았다. 자기 마을사람들 이라면 딴 마을에서 파는 것보다 되려 좋은 사과를 가져다 놓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사과가 딴 마을 가면 경쟁력이 없으니 자기 마을에서 파는 것인가.
우리사회에서 자기가 못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피해의식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좋아하지 않으면서 배려라고 흠집난 사과 만을 고른 사람은 과연 아름답게만 볼 것인가? 그 흠집난 사과 만을 먹는 자기 가족들은 생각하지 않는 것인가. 집에 가서 딸아이가 흠집 나서 사과 안 먹는 다면 어쩔 것인가? 혼자 만 그 6개 사과를 다 먹는다면 되려 가족들 배려 안 하는 것이 되지 않는가. 자기도 먹다가 맛없으니 '행복이' 라는 사람이름을 개한테 붙여가며 보행기 태워주는 애완견ㆍ개 먹으라고 사과를 줘서 개사과라는 말이 나온 것인가

한국사회는 지금 사과를 하지 않거나 얼렁뚱땅 넘어가면서 배려하라, 겸손하라는 文과 語가 넘쳐난다. 《디지털폭식사회》라는 책에 말을 더 보테면, 디지털기기를 통한 남 것에 배려와 겸손을 말하는 文語가 고흥 나로도 바다에 돌문어처럼 바글바글하다.

상한 문어를 잘 못 먹으면 배탈이 나듯 , 상한 디지털정보를 잘못 소화하고 이 정보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배출하지 않으면 뇌의 뉴런에 차곡차곡 정보가 쌓인다.
그리고 뇌 비만이 찾아와 머리가 무겁게 되고 우울증, 조울증 그리고 심하면 죽음이 앞당겨진다. 언론이나 휴대폰 회사에서는 그것을 절대 말해주지 않는다. 서로 얽히고설켜 다음 최신버전 팔아먹어야 하고 광고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돈이면 안 되는 것 보았는가?

디지털ㆍ정보화 사회에서는 지배권력이 확대 재생산해 내는 정보와 지식이 문제다. 오늘도 그들은 보이지 않는 지배권력의 사회구조를 공고히 하고 되물림하려고 겸손과 배려라는 이름으로, 아니면 남의 말 들어라 , 경청이 중요하다는 글을 쓰고 있을지 모른다. 성경책 다음으로 세계인들이 많이 읽는《어린왕자》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명언에 대한 사회구조적 해석이다. 구조를 만들어낸 사람만 보이지 구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티브이를 왜 바보상자라 하는가? 세상에서 가장 말 많은 것이 테레비다. 이제는 그 바보상자가 한두 개가 아니다. 케이블을 타고 종합방송채널이라는 가면을 쓰고 여기저기서 전 국민 바보 만들기 쇼를 한다. 특히 어르신들이나 은퇴자들 바보 만들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듯하다. 돌을 직구로 맞으면 사람이 어떻게 되겠는가? 유명패널들이 싸움도 아닌 말씨름에 쌈박질하는 그 <돌직구> 쇼를 어른들은 재미있다고 본다. 그 돌직구가 종국에는 자기 뇌로 날아올지 모르면서 말이다. 돌직구쇼 대항마는 돌문어 진실인가, 진솔인가?

기성신문은 칼럼으로는 좋은 글이라며 겸손과 배려의 미덕을 이야기한다. 경제면에는 부동산 억! 억! 억! 하는 게 우리네 신문들이다. 전 국민 중에 집 없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가. 무주택자들에게 겸손하고 배려하고 있는 것인가?
일부 신문은 소유주가 아예 건설업체다. 신문은 대기업이나 기업의 광고가 밥줄이다. 이런 지배구조ㆍ지배권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서민들이나 청년들은 속아 넘어져 집을 샀다가 곡소리 내기 딱 좋다. 이런 사회에서 애 하나 더 낳아 봤자, 팝콘브레인 하나 더 티기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려서 펑~소리 나는 팝콘(=티밥) 소리는 들어 봤는가? 뻥소리 내는 뻥튀기 기계가 우리사회 구조는 아닐까
이걸 또 정권이 교체되면 달라지겠거니 하는 사람은 그 또한 뻥 튀겨진 게 아닌지 자가진단해 봐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19만 병인가, 사회병이라는 성인병도 있다.

우리사회는 배려와 겸손이 부족해서 문제라기보다 배려하는 척~, 겸손한 척~척척척 너무해서 뇌를 세탁기에(?) 세척이라도 해야 되는 사회다. 뇌세탁이라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남현희ㆍ전청조 사건이 그 끝판왕이다. 돈이면 생명체의 근원인 씨구별 암수구별도 필요 없다.
또한, 뒤로, 뒤로 호박씨를 깐다는 것이 더 문제다. 호박씨를 앞에서 까면 그게 호박씨든지 오시씨 든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호박씨, 오이씨, 사과씨를 한 번도 심어 보지 않고 호박과 오이와 사과를 함부로 논한다는 게 또 문제다. '뒤로 호박씨 깐다'라는 말에는 찌저지게 가난한 조선선비집에서 굶주림에 뒤로라도 호박씨라도 까먹어야 하는 가난했던 여인네의 애환이 서려있다. 그 애환을 어른들이 흘겨보고 지금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로 만들어버렸다. 한국사회가 지져지게 가난했다는 것은 까막해 잊은 지 오래다. 이렇게 본래의 깊은 의미와 다르게 한국인의 무관심과 탐욕으로 혼탁해진 國語가 한두 말이 아니다. 너무도 급하게 달려오다 보니 현상과 말이 앞뒤가 서로 맞지 않는 말이 한두 가지 아니다. 그 앞뒤가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이 불일치하는 언행불일치(言行不一致)로 한국사회가 점점 빠져들고 있다. 이런 사회상(象)으로 표상하여 출현한 그녀가 공포의 맷돌녀다. 몸과 머리가 따로 논다. 입(言)과 몸(行)이 따로 논다.

이런 일간베스트(일베)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이들은 상당히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다. 대중들 무의식 속에 고착된 자아상(象)ㆍ사회상을 끄집어 낸다. 그래야 대중들이 잘 소비한다. 대중들은 그냥 웃고만 넘긴다. 그리고 나도 어느새 맷돌남이 되어간다. 오늘에 맷돌녀는 머리와 목이 따로 놀고, 머리와 몸도 따로 논다.
그날에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콩국물을 걸쭉하게 뽑아내는 맷돌이 있었다. 소반다듬를 하고 시어머니가 콩을 넣으면 며느리는 맷돌손잡이 곡두를 돌린다. 위층 돌이 아래층 돌과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돌고 돈다. 걸쭉한 콩국물을 내는 맷돌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사회 소위 상류층과 하류층, 가진자와 못가진자가 서로 어떻게 共感하며 共生해야 되는지 일러주는 듯하다.

고흥 나로도에는 맷돌을 돌리는 손잡이 곡두를 닮은 조그만 섬 곡두섬이 있고, 사람들은 그섬이 누운 여성을 닮았다하여 곡두녀라 이름지웠다. 낚시꾼의 천국 곡두녀에는 눈먼 돌문어가 많이산다. 눈먼 돌문어가 그래도 부모님들에게 잡혀 남도의 밥식탁이나 제사상에 올라간다. 눈밝은 돌문어들은 먼 바다 태평양으로 떠나 미국갔나 소식이 없다.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동요를 들어 볼일이다. 아이들은 덜 배워서 부족할지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앞과 뒤가 다르지 않고 머리와 몸이 따로 놀지 않는다. 노점에서 아이들이 사과를 골랐으면 어떠했을까?
🎵 사과 같은 내 얼굴~하면서 흠집 없는 이쁜 사과만을 골랐을 것이다. 그리고 행상은 이쁜 사과를 더 팔려고 반짝반짝한 더 이쁜 사과를 가져다 놓았을 것이다. 고품질 사과를 가져다 놓아 더 비싸게 값지게 팔 생각도 해보야한다. 가격이 착한게 아니라 품질이 착해야 더 값진 사과다.

사과를 저장해 두고 파는 것이 아니라 주문형으로 파는 가게도 보았다. 그때 그때 필요한 양 만큼만 현지에서 주문하여 썪지 않게 유통하여 고품질 착한과일을 공급하는 방법도 있다.

유럽사람들이 요즘에 우리시대 최고👍 철학자요《너무나 너무나 인간적인》사람이라는 니체가 왜 노년에 아이의 단계로 강인한 초인처럼 살라 말했는가.
짐을 지고 가는 낙타에서 맹수 사자의 단계를 넘어《아이의 단계》가 성숙된 인간형이라 왜 니체가 말했는지...아이에게 왜 성숙이라는 말을 썼는지...

애 같은 소리하네~라고 무시하지만 말고 아이들 동요를 들어 볼 일이다.
🎵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가수 이승철 노래 제목이 왜 <소녀시대>이고, 그 소녀시대에 왜 청년들이 열광하였는지 어른들은 생각해 볼일이다.
나도 이제는 어른이다. 이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도덕을 똥떡이라 했다고 나무라지만 말고 나는 앞뒤가 맞게 행동했는지 답할 차례다. 어른들 세대의 도덕은 무엇이였는지 답할 차례다.

고향상실의 시대에 누님이 보내준 고흥(공~) 감이나 먹어야겠다. 송수권 詩 <까치밥> 시나 읽어야겠다. 공~감은 몰랑몰랑한 홍시가 맛있고 몰랑몰랑한 뇌는 공감을 잘한다.

저녁에는 고흥식당에서《남도의 밤식탁》돌문어나 먹어야겠다.사과 아임소리(sorry)가 개사과 소리로 들리니 견공(犬孔)들이 웃을 일이다. 사과에도 심심한 사과나 유감이라 하니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아니 꼬운데 개사과라도 한다는 한국어인가?
공감은 공~감이다.
사과보다 더 값진 공~감에 공감이다.

♡ 공감과 공~감 ♡

■ 카톡에서 옮긴 글;《 좋은아침》
🎋🌿ྎᭂ͡🫒🕊ྎᭂ͡🌱ྎ*
작고 못생긴 사과..
어느 마을 길 모퉁이에 한 과일 행상이 있었답니다.
손을 다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리어카를 마련해 자기 마을 어귀에서 사과를 팔기로 했대요
장사를 하던 어느날 한 손님이 다가와 묻더래요. "이 사과 어떻게 하지요?"
"예! 천원에 두개 드립니다."
그사람은 삼천원을 내고 사과를 고르는데...
작고 모나고 상처가 있는 사과만 여섯개를 골라서 봉투에 담아 가더랍니다.
며칠후 그 사람이 또 와서는 똑같이 그렇게 사과를 작고 모나고 상처난 것만 골라 담더랍니다.
그 사람이 세번째 오던날 행상이 말했답니다.
"손님 이왕이면 좋은 것으루 좀 고르시지요...!"
손님은 행상이 하는 말을 듣고도
그저 웃는 얼굴로 여전히 작고 시들고 모나고 못생긴 사과만 골라 담으며 말하더랍니다.
"그래야 남은 사과 하나라도
더 파시지요. 저두 어렵게 사는데 댁은 더 어려워 보이세요. 힘을 내세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잖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행상은 숨이 멈춰지더랍니다.
그리곤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답니다.
아직은 세상에 아름다운 사람들이 이렇게 있구나...
사과 봉지를 들고 돌아서 가는 그 사람의 뒷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더랍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더 이상 부끄러워 하지않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용기가 불끈 생기더랍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배려가 이 세상은 살맛나게 만드나봅니다.
작은 관심과 배려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인생을 변화시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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